외환시장에서 달러 수급이 갈수록 악화되자 대기업들이 유동성 확보와 수입대금 결제 등에 대비, 일제히 달러 보유 확대에 나서고 있다. 특히 대규모 원자재 수입이나 해외 인수합병(M&A)을 앞두고 있는 기업들은 원ㆍ달러 환율 상승세가 이어질 경우 자칫 수천억원 단위의 추가지출을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도 있어 달러확보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5일 산업계 및 금융기관에 따르면 정유 등 수입업종뿐 아니라 전자ㆍ자동차 등 수출기업들도 유입되는 달러를 원화로 바꾸지 않고 달러 예금 형태로 보유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기에 대비하자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최근 수출대금으로 번 외화를 대체로 달러화 형태로 예금해두거나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다. 시장에는 삼성전자가 세계 1위 플래시메모리 업체인 미국 샌디스크 인수를 추진하면서 달러를 확보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다. 삼성전자는 샌디스크에 인수 희망가 58억5,000만달러(약 6조원)를 제시해놓은 상태이며 지난 6월 말 현재 삼성전자의 보유 현금은 총 6조원선이다. LG전자 역시 원활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채권 매각 등을 통해 달러화 보유액을 늘리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현대차ㆍ기아차 등 완성차 업계는 수출대금으로 들어오는 달러화가 많아 큰 어려움은 없지만 앞으로 벌어질 수 있는 추가적인 금융위기에 대비, 원화와 달러 보유 비율을 최대한 탄력적으로 운용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포스코도 원ㆍ달러 환율 변동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즉시 원화로 환전하지 않고 그대로 보유하고 있다가 철광석ㆍ유연탄 등 원재료 구매 대금으로 활용하고 있다. 포스코가 이른바 ‘내추럴 헤징’으로 불리는 이 방법에 활용하는 액수는 연간 70억달러에 달한다. 철강업계의 한 관계자는 “주원료ㆍ주연료ㆍ반제품 등을 100%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철강업계는 환율쇼크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편이라 달러 보유를 늘리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SK에너지ㆍGS칼텍스 등 정유업종도 달러 보유액을 늘리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SK에너지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달러화 예금의 금리가 낮아 수출대금이 들어오면 즉시 원화로 바꿔 자금을 운용해왔다”면서 “그러나 최근 달러화 조달 금리가 리보(LIBOR)+400bp까지 상승함에 따라 전략을 바꿔야 하는 단계에 다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석유화학업계도 기초원료인 나프타의 절반 이상을 해외에서 들여오고 있어 최대한 제품 수출 대금으로 받은 달러화를 축적하자는 입장이다. 더불어 내수보다는 최대한 수출 비중을 늘리려는 움직임까지 확산되고 있다. 선박 건조에 걸리는 2~3년 동안 선수금, 중간 결제, 자재수입 등 복잡한 금융 거래가 이뤄지는 조선업종도 자금 운용이 더욱 중요해졌다. 조선업계는 모든 달러 수입과 지출에 대해 선물환 헤지를 해놓고 있지만 최근 미국 금융기관 부실화가 우려되면서 앞으로는 직접 달러화를 보유하는 쪽으로 자금 운용폭이 변동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삼성물산ㆍLG상사ㆍ대우인터내셔널 등 종합상사들도 확보한 달러를 일정 기간 보유하고 보자는 입장이다. 삼성물산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달러 유입분 중 필요한 액수를 해외에 결제하고 남는 부분은 바로 원화로 환전했지만 최근에는 달러 조달 위기감이 팽배해져 달러 보유를 늘리고 있다”고 발했다. 대기업들이 달러보유 확대에 나서면서 중소기업들의 걱정은 더욱 커지고 있다. 중소 무역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출형 대기업들이 달러를 풀지 않아 수급이 더욱 달렸고 이 부분이 환율 상승을 더욱 부채질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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