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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각제 논의의 앞과 뒤(사설)

지금 우리 정치권에서 또하나의 환상을 만들어 내려는 세력이 있다. 내각제가 대통령의 전횡을 막는 만능의 장치인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결론부터 말해 그같은 주장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 가방 탓만 하는 것과 하등 다를게 없다. 내각제이든 대통령중심제이든 제도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운영주체의 자세이다. 두 제도 모두 잘 운용되면 민주국가이고, 잘못 운용되면 독재국가가 된다. 전자의 예는 두말할 것 없이 영국과 미국이고, 후자의 예는 하도많아 댈 수 없을 정도이다. ○경제회담에 끼어든 권력 논의 4월1일로 예정된 경제회복을 위한 여야영수회담에서 자민련의 김종필총재는 내각제도입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정식 제의하겠다고 공표했다. 내각제 주창자인 김총재는 정국안정이 경제회생의 관건이라는 명분을 내세웠는데 여야없이 내각제논의로 가뜩이나 정국이 불안정한 때에 그같은 제의가 정치안정과 경제회생에 어떻게 작용한다는 얘기인지 그의 시국인식에 실망감이 앞선다. 경제를 얘기하겠다는 자리에서 권력얘기가 불거진다면 만남의 결과는 보나마나다. 우리는 굴곡많았던 헌정사에서 숱한 개헌을 경험했다. 정부수립후 대통령제를 채택해 이승만 독재정권의 장기집권을 맛봤고, 4·19혁명이후 내각제가 도입되었다가 김총재 등이 포함된 군부세력의 5·16쿠데타로 다시 대통령제로 돌아선 후, 유신개헌으로 대통령 간선제까지 경험했으며 6·29선언으로 직선제로 돌아와 지금에 이르렀다. 그 과정에서 역대 대통령들이 하야·망명, 피살, 유배, 투옥되는등 온갖 비극적 상황들이 연출되었다. 그리고 그같은 비극이 다시 반복될지 모르는 불행한 사태에 직면해 있다. ○대통령과 제도는 구분해야 지금 논의되고 있는 내각제는 한보사건과 김현철 스캔들로 인해 국민들의 대통령제에 대한 혐오감이 극도에 이르른 시대분위기를 타고 있다. 여기에 여야대권주자들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한층 증폭되고 있다. 한보사건과 김현철 스캔들은 본질적으로 대통령의 잘못된 국정운영에서 기인됐다. 그러나 분명히 해둘 것은 대통령의 능력이나 자질의 문제와 제도의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는 점이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데는 제도의 허점 탓도 있지만 허점을 알고서 방치한 정치권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본다. 이같은 문제점에 대한 개선의 노력도 없이 또다른 부작용이 예상되는 내각제의 도입이 만병통치약이라도 되는 것인양 선전하는 것은 국민을 호도하는 처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사태의 본질은 대통령의 아들이 대통령의 위세를 업고 국정을 농단했다는 것이고 그같은 농단이 인사개입에서 출발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현행 헌법에 대통령은 국무총리만을 국회동의를 얻어 임명할 뿐 여타 공직자들을 독단으로 임면할 수 있다.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동의도 가부만 묻지 자질을 따지지는 않는다. 김현철 스캔들의 핵심은 학연과 지연에 바탕한 소위 실세그룹들이 국장급에서 장관에 이르는 정부인사에 광범위하게 개입했다는 점이다. 한보사건도 그같은 인사권 전횡이 필연적으로 낳게 된 이권개입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국회인사청문회 도입이 우선 대통령의 권력집중을 제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공직임명에 대한 국회청문회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고위 공직임명에 국회의 인사청문이 가해진다면 대통령이 11개월짜리 장관들을 양산하는 식의 인사는 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3자의 불순한 인사개입 가능성도 걸러질 수 있었을 것이다. 국회는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에 대한 탄핵소추나 국무위원에 대한 해임건의안으로 견제를 할 수 있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으로 끝나고 만다. 미국 의회가 갖고 있는 대통령 견제수단 중 가장 강력한 것의 하나가 고위공직 임명에 대한 상원 인준제도이다. 그동안 야당들은 인사청문회 도입을 더러 주장하곤 했으나 말로 그치고 말았다. 국회는 제몫 챙기기 차원에서라도 인사청문회제도 도입을 서둘러야 한다. 그것도 안하면서 제도 탓만 하는 것은 무책임한 노릇이다. 일각에서는 인사청문회가 도입될 경우 국정의 난맥을 우려하는 시각도 있으나 공직사회의 독립성이 확보될 경우 이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취임한지 2개월이 넘었음에도 아직껏 주한대사를 임명하지 못하고 있지만 대사관 운영에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고 있다. 핵심포스트인 중앙정보국장 자리는 인준과정에서 문제가 제기돼 지명자 스스로 사퇴해 아직껏 공석중이다. ○의원 공천권도 주민에게 이와 관련해 고쳐져야 할 또 하나의 제도는 국회의원 공천제도이다. 이는 여야 모두에 해당되는 사안이다. 대통령의 권한축소 문제가 국회에서 공론화하지 못한 것도 이것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여당의원 입장에서 자신에 대한 공천권을 쥐고 있는 대통령의 권한제한을 말할 의원은 없다. 이 문제에 관한한 야당총재와 의원간의 관계는 여당보다 더 하다. 정당정치의 기본은 지역주민들에게 대표자 선택권을 돌려주는 것이다. 지금도 궁극적인 심판은 주민의 투표로 가려지지만 정당의 공천은 엄청난 프리미엄을 제공한다. 특정지역에서는 공천이 곧장 당선이다. 그러다보니 「공천장사」라는 말이 공공연하다. 내각제는 바로 이같은 비민주적인 패거리식 정당운영을 더욱 고착시킬지언정 개선시킬 여지는 적다고 본다. 이같은 제도개선엔 입을 다물면서 내각제 운운하는 것은 일의 선후가 한참 뒤바뀐 것이다. 지금은 경제난 해결에 온국민이 지혜를 집중해도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위기 상황임을 정치권이 바로 인식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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