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신년 남해 금산 일출은
입력2004-01-08 00:00:00
수정
2004.01.08 00:00:00
무박 (2003.12.31(수)/2004.01.01(목)
인원: 산악회 버스 한대
날씨: 맑고 포근함
일정: 서초구민회관 (22:50) – 옥산휴게소 –산청휴게소( 02:15-03:00) – 삼천포 대교 (03:50) – 상주골 (04:45-5:00) – 입구(05:30) – 휴식( 06:00-10) – 헬기장 (7:00) – 정상 해맞이(7:10-50) – 보리암 – 상주 매표소 (10:00) – 점심 (11:35-13:40) – 양재 (18:50)
2004년 새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세월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항상 푸른 소리를 내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우리 인간사도...간과~쓸개 제대로 챙기고 살면 살만한 세상이지 않는가?.... (원단 보리암과 사량도 산행을 하신 한 산녀의 새해 바램이 맘에 들어서)
정상 코앞에서 마지막 점검을
이미 1시간 반 가량 어둠속의 등산으로 계곡을 지나, 암능을 타고 부소암 옆으로 구름다리도 건너왔다. 억새밭이 주위에 펼쳐진 헬리포트 같은 넓은 공터에 이르니 정상(681m)이 바로 코앞에 보인다. 7:00/ 바람이 조금 세지는 것 같다. 정상에 가봐야 추우니까 이 곳에서 쉬어 가자는 대장님의 말씀이다. 뒷좌석에 앉았던 백두대간팀의 한 멤버라는 중년 언니가 내가 혼자 온 것을 알고 해온 떡이라며 권한다. 그런데 오는 길에 후레쉬가 불이 나가더니 이번에는 윈드스토퍼의 자크가 올라가지 않는다. 자크를 올리지 않고는 정상에서 해돋이를 볼 때까지 추위를 견뎌내지 못할 것 같다. 백방으로 노력해 봤지만 되지 않아 헐 수 할 수 없이 혹시나 해서 준비해 온 오리털잠바를 꺼내 덮어 입었다. 오히려 잘된 것 같다. 내려오면서 알았지만 조그만 나무조각이 자크 시작하는 홈에 들어 가 그렇게 안되는 것을 불량품으로만 알았으니…
사람들이 여기 저기서 올라온다. 어둠이 가시면서 주위에 우뚝우뚝 솟아있는 바위봉오리들이 보인다. 먼 옛날 이 곳 섬사람들에게 바다를 건너 가보기 힘든 금강산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보여주기 위해 맛 뵈기로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것이란다. 금강산처럼 광범위하지는 않지만 저마다의 위용은 전혀 손색이 없다. 부소암은 천길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이 곳 사람들은 금산을 소금강이라 부른단다.
정상 해돋이용 바위들에는 발디딜 틈 없어
시누대 밭 사이로 올라가니 이미 사람들이 조망이 괜찮다 싶은 바위에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이곳 바위들은 해돋이용으로 만들어 놓았나 싶을 정도다. 어느 것 하나 모나 있는 게 없이 부드럽게 사방에 솟아 있다. 오솔길처럼 바위사이로 끝까지 올라가니 옛날 봉수대로 쓰였다는 곳이 나오고 여기도 마찬가지다. 중천에 별들은 보였지만 바다위로 구름이 깔려 있어 조망이 안되고 그래서 해돋이는 힘들 것 같다. 그렇게 쉽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미 깨우쳤기에 애초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지만... 기상청이 발표한 갑신년 원단의 해돋이 시각은 7:43분.
카메라 정조준하니 해만 안잡혀
``구름 때문에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해를 볼 수 없는데 기다리며 벌벌 떨 필요가 있냐``며 내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어차피 혼자 내려가봐야 별 재미도 없을 것 같아 기다렸다. 어떤 여자분 둘은 누비 이불속에서 추위를 피하고 있고, 추워보이는 비구니들도 동쪽을 향하고 있다. 내 시계로 채 40분이 안되어 붉은 해가 머리부분부터 내민다. 해돋이 하면 TV를 통해 본 용광로처럼 작열하며, 소 혀바닥같이 길게 내려뜨리면서 수평선위를 올라오는 것을 생각하는데, 짙은 구름이 보안경 역할을 해 이글거리는 맛도 없고, 서녘하늘의 달보다 적다. 그래도 해가 구름속에서나마 완전히 올라오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환호성에 박수를 친다. 개선장군 환영하듯이... 디카에 담아보고 싶어 얼른 꺼내 초점을 맞추니 정작 보여야 할 해만 보이지 않는다.
산에 많이 갈 수 있도록 빌어
모두가 솟는 해를 보고 갑신년 새해의 소망을 빌고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보았을 것이다. 나도 물론 식구들 건강하게 해 달라고, 더 많이 산에 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해의 조촐한 모습을 보인게 혹시 지난해 너무 정치사회적으로 시끄러웠고 금년도 역시 그럴 것 같아 좀 조용하길 바래서 그런 건가? 어느 TV개그에서 분위기가 너무 업돼 나왔다며 아이스를 뿌리던 아이스맨처럼 좋지 않을 일들이 금년에도 너무 업될까 봐 예방 차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서민들이 신명나게 살도록 업시켜야할 일면도 있다는 것을 원단의 해가 모를리 없을 것이다.
해가 완전히 솟아 오르고 구름 밖으로 부연해지자 이젠 사람들이 물밀 듯 내려간다. 대부분 보리암쪽을 향하고 있다. 여기저기서 한꺼번에 쏟아지는 바람에 그냥 도도하게 밀려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오늘 일출 후의 인파를 보니 갑자기 비가 오면 계곡에 물이 불어나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겠다. 해돋이를 놓친 사람들도 정상을 올라 오겠다고 계단을 오르니 흐름이 더욱 느려진다.
좁은 보리암에서 교통체증이 절정을 이룬다. 지난 93년 8월 한여름 더위 속에 남해에 왔다 복곡저수지에서 이 암자에 올라 섰으나 운무에 싸여 아무 것도 못 보고 되돌아 내려갔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관음보살은 중생들의 말 너무 잘 들어줘
남해의 보리암은 동해안 양양의 낙산사, 서해 석모도의 보문사와 함께 영험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3대 관세음보살 기도 도량이다. 부처님의 핵심 정신인 자비(사랑)만을 떼어 관세음 보살이라는 전도사에 실현시킨 것. 부처님이 너무 먼 당신이라면 관세음보살은 속세에서 자비심을 가지고 소원을 잘 들어줘 너나 없이 접근하기 쉬운 보살님이다. 그래서 아들딸의 좋은 수능성적을 빌 때, 좋은 직장에 취직시켜 달라고 할 때 찾는 곳이 관세음보살을 모셔놓은 절이다. 보리암에도 하루 네 차례에 걸쳐 기도하는 시간을 만들어 놓아 소원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이 전국 도처에서 몰려 온다. 그래서 북쪽 복곡저수지에서 올라오는 길은 시멘트를 깔아 차가 거의 끝까지 올라 온다. 보리암에 오는 사람이 오죽 많으면 일찍부터 이런 편의까지 제공해 주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복곡에서 올라 왔다는 산녀 한분은 ``보리암 올라오는 내내 매연만 마셔 가지고... 그거 기분 되게... 새해 시작하는 해맞이 오면서 멀지도 않는 길을 택시를 타고 가는 사람들은 무슨 소원을 빌까? 하며...미워하다가...새해 부터 이러면 안돼쥐...하늘의 별을 한번 쳐다보고....``
이성계가 100일 기도를 하고 개국을 했다는 일화는 이곳 금산이 영험한 곳이라는 것을 은근히 확인해주는 사례다. 이성계는 개국 후 이 산에 대한 보답으로 보광산에서 비단으로 둘러 주고 싶어 아예 금(錦:비단금)산으로 개명해주었으니… 사람들이 믿든 말든 이태조기단이라는 바위가 지금도 전해내려오고 있다…
북쪽 묘향산의 보현사가 관음도량(?)
동서남에 하나씩 영험한 관음도량이 있으니 구색을 맞추자면 북쪽에도 하나는 있을 법 해 묘향산의 보현사쯤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은 이내 빗나간다. 관세음 보살의 고향은 인도의 남쪽 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낙가산 (補陀落迦山). 멀리 떨어진 바다속 산에 살면서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고 소원을 빌면 들어 주는 오빠나 누님 같은 보살님이다. 그래서 관음도량은 섬이나 바다를 향해 관음고향인 보타낙가산을 가까이 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기도를 해도 가까워 더 영험할 게 아닌가?! 낙가산, 보타산, 낙산 등의 이름이 보타낙가산에서 왔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고 관(세)음 보살과 연관이 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다가 없는 북쪽에 영험한 관음도량이 없는 것도 쉽게 이해가 된다. 부여 고란사도 관세음 보살을 주부처로(원통보전) 모시지만 그렇게 영험한 것으로 소문이 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관음은 천수(千手)관음이든 십일면(十一面)관음이든 상관 없다. 속세의 모든 소리(世音)를 보고(觀) 들어주는 임무는 같으니... 그래서 이 곳 보리암의 불사의 감로수병을 들고 서 있는 해수관음상에는 불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낙산에도 비슷한 해수 관음이 서있고, 보문사에는 마애불이 서해를 향하고 있다.
아담한 3층석탑이 해수 관음상 앞에 서 있는데 나침반이 있는 사람들은 기단부에 한번씩 놓아본다. 아무래도 그 아래 자력을 흐트러뜨리는 뭔가 있음에 틀림없다. 탑 자체보다 이 자력을 교란시키는 괴력 때문에 관음상에 기도하고 난 관광객과 등산객의 발길이 멈춰진다.
남해 군민들, 어린 시절의 꿈 금산에서 키워
남해에서 자란 사람들은 꿈을 많이 품고 어린 시절을 보냈음에 틀림없다. 금산의 기암괴석이 온갖 얘기를 간직하고 있으니까. 금산 38경이라는 데 다 찾기도 쉽지 않다. 하나하나가 내력과 전설을 머금고 있다. 남쪽에서 보리암을 향해 올라오다 보면 떡 버티고 서 있는 바위자체의 위용에 기가 죽는데 정면에 두개의 구멍이 크게 뚫려 있다. 정말 해골의 두 눈같다. 쌍홍굴(雙虹:한쌍의 무지개 굴). 구름이 없으면 다도해가 그림같이 펼쳐질테지만…. 한쪽 구멍에서 돌로 만들어진 배가 미끄러져 나가 앞바다의 세존도(島)를 뚫고 나갔다는 괴기한 얘기까지 만들어 놓았다. 이 금산에는 제일 웅장한 보리암의 수호봉 대장봉, 원효, 이태조가 기도했다는 좌선대, 머슴과 주인마님과의 로맨스가 얽힌 상사암, 네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닐었다는 사선대(四仙臺), 낮에는 일(日)자 밤에는 월(月)자로 보인다고 해서 일월암 등 일일이 다 댈 수도 없다. 부소대라는 곳은 진시황의 아들까지 동원해 놓았다. 물론 단군성전도 있다. 어쩌면 언젠가 기독교도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유태교, 기독교, 이슬람교도들이 서로 으르렁거리는 예루살렘처럼 되지는 않겠지만…
꼴찌로 차에 타
구경도 제대로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상주 매표소에 내려오니 10시 5분전. 대장님이 입구에서 기다리신다. 나만 빼고 다들 차에 올라있단다. 꼴찌에서 두 번째가 내 산행의 기본 생각인데 일행들과 흩어지는 바람에 가늠을 못했다. 그리고 10시 넘어 오는 사람도 꽤 있으리라는 생각에 느긋하게 왔더니 벽두부터 꼴찌라는 훈장을 하나 달았다. 그래도 제시간에 왔기에 눈살 찌푸리는 일행은 없어 보였다.
10:10/ 내가 올라타니 이내 기사님은 사천(삼천포)을 향해 악셀을 밟는다. 금산 정상에서 못 본 상주 해수욕장과 섬이 점점이 떠 있는 바다가 남쪽에 평화롭게 놓여 있다. 항아리처럼 생긴 천혜의 상주 해수욕장. 10년 전 비집을 틈이 없어 옆 송정해수욕장 귀퉁이에서 놀았던 게 생각난다. 그러나 지금 겨울의 상주해수욕장은 너무 조용해 여름이 와도 그렇게 북적대지 않을 것처럼 하고 있다. 대장님은 길가의 왕벚꽃 피는 4-5월에 오면 금산과 같이 즐기기에 너무 좋단다.
그리운 자유를 찾아 월남한 김만철씨가 정착한 곳이 남해의 미조라는 걸 보면 남한의 평화스러움이 서울이 아닌 남해에 흘러넘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남국의 냄새가 산, 도로가, 바다 곳곳에서 스며난다.
남국의 정취를 남해도로를 따라 돌며
수줍어 하며 빨갛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동백과 야자수가 가로수로 서 있고 유자밭의 노란 유자가 서울에서는 보기 힘든 남국의 풍경이다. 밭에는 마늘, 배추, 시금치가 푸르게 있어 마치 봄이 오는 것처럼 보인다. 시금치를 보더니 뒷자리 앉은 언니가 밥 싸먹으면 맛있겠단다. 산에는 상록 활엽수의 사스레피나무와 개동복사리(?), 침엽수인 삼나무가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었다. 바다에는 한가로이 떠다니는 조그마한 고깃배들, 하얀 부표가 말해주는 양식장들, 해변에는 바다 낚시하는 사람등 하나같이 여유롭고 다감해 보인다. 해변을 굽이굽이 돌다보면 옛날 조성했다는 방풍림도 보이고 아래로 시퍼런 물이 보이는 단애도 나타난다. 폐가도 없이 도로와 집들이 깨끗하게 단장되어 부자섬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도 멸치가 잘 잡히는지 모르지만... 이런 것들을 금산 정상에서 구름으로 남아있는 곳에 하나씩 끼워 넣어 한 폭의 수채화로 완성시키는게 지금 이곳 해변을 달리며 해야 할 일이다.
지난 4월 삼천포 대교가 뚫려 남해에서 창선도를 지나 삼천포로 신나게 달릴 수 있으나 오늘은 많은 해돋이 차량으로 서다가다를 반복 한다. 삼천포 어항에 내리니 11:35. 이미 다른 등산, 관광객들도 음식점을 찾아 바삐 움직인다.
혼자서 서성대다 대장님이 식사자리를 같이 하자고 제의, 산악회 진행자들 포함 10여명이 모였다. 여기까지 왔는데 밥만 달랑 먹고가기가 그렇다.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광어, 우럭, 오징어, 한치등 꽤 많이 회를 떠 왔다. 마시지 않을 것 같더니 안주가 좋아 소주병이 금방 금방 비워진다. 출발시각 13:40.
에필로그
잘 다녀왔다는 생각이었다. 일상을 일탈한 곳에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는 계기였다. 구경하다 흘리고 온 나머지를 위해 금산을 다시 한번 조용히 돌아 보고 싶다. 승용차에 스치신 아주머니는 별 탈이 없으신지도 궁금하다. ``느림보``라서 나에게 꼬리를 잡혀 남해 금산까지 데려다 준 이 산악회에 감사드린다. 대장님을 비롯한 동행한 모든분들 금년 한 해 복 많이 받으시고 등산 열심히 다니시기를... 지난 1년을 같이 했던 ok 회원님들에게도 행운이 같이 하시길...
<채희묵 코리아 타임스 편집위원 >
오늘의 핫토픽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