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항공기 구매금융 시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항공기금융이란 항공기 구매 또는 운용을 위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실물자산 가운데 안정성이 높은 투자처 중 하나로 꼽힌다. 항공사나 항공기리스사가 항공기를 구매하기 위해 중장기 금융을 일으키는 형태다.
항공기금융 시장에서 전통의 강자는 유럽계 은행들과 기관투자가·증권사 등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내 상업은행들도 이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유럽계 은행들이 경기악화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해외 항공사나 항공기리스사 등이 국가신용도가 높고 자금조달 측면에서 안정성이 돋보이는 국내 은행들에 적극적인 손짓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KEB하나은행이 내년부터 총 1억달러 규모로 3건의 항공기금융에 참여하는 등 항공기금융 비중을 크게 높인다. 항공기금융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범용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 에어버스의 A320과 A330, 보잉사의 B737·B787 등의 기종을 대상으로 진행될 10억달러 규모의 구매금융에서 약 10%를 KEB하나은행이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관투자가들이나 증권사 등이 그간 항공기금융에 진출한 사례는 꽤 있었지만 상업은행의 항공기금융 진출확대는 다소 이례적이다.
KEB하나은행은 앞서 중국의 비행기리스 회사인 CALC의 항공기금융(8,000만달러)에도 2,000만달러 규모로 참여한 바 있다. 또 A사의 B787, T사의 A330 구매금융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까지 참여한 항공기금융 금액이 1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를 2억달러 규모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항공기금융은 성장 가능성이 높으면서도 리스크는 높지 않아 대체투자 수단으로 최근 각광 받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대륙 간 이동 등 장거리여행에 대한 수요 확대로 대형 항공기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데다 유럽계 은행들의 신용등급이 최근 수년간 하향되면서 항공사나 항공기리스사들이 새로운 '자금줄'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오는 2033년까지 항공기 교체 및 추가 도입에 필요한 신규 항공기 수요는 3만8,000대에 이르고 관련자금 규모는 약 5조2,000억달러(약 6,0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적어도 절반 이상이 자본 시장 또는 은행에서 조달된다.
전통적으로 소매금융에 집중했던 KB국민은행 또한 항공기금융 시장 참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아랍에미리트 및 독일 항공사들이 KB국민은행을 직접 찾아오는 등 대면접촉도 잦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KB 국민은행의 한 고위관계자는 "국제금융시장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금융 리스크가 크지 않고 외화조달 측면에서도 안정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많아지면서 한국계 은행을 찾으려는 니즈가 커지고 있다"며 "국내 은행들도 국내 시장에서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만큼 새로운 '틈새시장'으로서 항공기금융 참여를 적극 검토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중장기 해외투자에 지극히 보수적인 국내 은행들이 항공기금융 시장 참여를 확대하는 것은 이 같은 외부의 니즈와 더불어 항공기라는 자산가치의 안정성 때문이다. 수출입은행의 한 관계자는 "항공기는 기본적으로 수요가 뒷받침되기 때문에 항공기 중고시장에서 가치하락으로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할 가능성은 극단적인 경우를 빼고는 거의 없는 것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항공기의 경우 보잉사와 에어버스 간 과점체제로 공급이 제한적이고 투자 간이 5~15년으로 장기간 안정적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으로 평가된다. 이에 따라 국내 은행들은 관련 팀 정비 등으로 항공기금융 전문성 확보를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윤홍우기자 seoulbird@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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