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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캐시카우 오늘과 내일] 1-3. 노조는 아직 ‘20세기(상)’

지난 3월1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차 노사가 다임러크라이슬러와의 전주 상용차 공장 합작건을 놓고 처음으로 마주 않았다. 이렇게 시작된 노사 협상은 이후 한달 가까이 10차례나 이어졌다. 하지만 매번 양측은 접점을 찾지 못한채 지리하게 시간만 끌었다. 지난 4월9일 마지막 협상 이후엔 만남의 자리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대차와 다임러가 합작법인을 설립하겠다고 약속했던 1차 시한인 5월13일 양사의 합작법인은 출범하지 못했다. 이유는 단 하나, 합작의 전제조건으로 노조가 요구한 `위로금`액수에 대한 노사간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었다. 사측은 전체 사업장을 감안해 100만원 이상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노조는 300만원을 하한선으로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다. 선진국에선 찾기 힘든 우리 노사협상의 풍경, 글로벌 톱5로의 도약을 위한 중장기 프로젝트가 노사 대립으로 암초에 부닥친, 바로 우리 자동차업계 노사관계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전세계 자동차 업체들이 21세기 패자가 되기 위해 약육강식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우리 노조는 20세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경쟁력을 갉아먹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회사는 `노동자 낙원`= 지난 5월2일 기아차 생산라인은 가동을 멈췄다. 노조원들이 집단휴무에 들어간 탓이었다. 새로 구성된 노조 집행부측에서 샌드위치데이(1일은 근로자의 날, 3일은 휴무일)인 이날을 휴무일로 일방 지정한 것. 기아차 관계자는 “노조 내부에서도 명분없는 휴무라며 논란이 많았다”고 귀뜸했다. 현대자동차는 생산 현장에 있지 않은 종업원들을 위해 해마다 36억원을 바친다. 3만9,000명 노조원중 90명에 달하는 노조 전임자에 지급하는 돈이다. 422명당 1명으로 일본 도요타(843명당 1명)의 두배다. 도요타가 상근 노조원에게 주는 돈은 한푼도 없다. 현대차는 어떤가.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그랜저XG를 회사로부터 무상 제공받는다. 전무급이다. 노조활동으로 회사발전에 기여한다는 이유다. 불행히도 현대ㆍ기아차 노조는 최근 3년 동안 금전 문제로 두차례나 지도부가 총사퇴하는 뼈아픈 경험을 안고 있다. 외국인들은 한국을 빗대어 `노동자 천국`이라고 곧잘 말한다. `귀족 노조`란 혹평도 내놓는다. 그리고 우리 자동차 노조는 그 중심에 서 있다. 일본계 기업의 한 사장은 “일본기업의 노조위원장은 반드시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귀족이 되면 현장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말한다. ◇감내놔라, 대추내놔라= 현대ㆍ기아차는 지난 1ㆍ4분기 실적 발표를 앞두고 웃지 못할 고민을 했다. 실적을 맘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이익이 너무 많이 나면 노사 협상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설명이었다. 자동차공업협회 관계자는 “우리 자동차업계는 노조가 무서워 경영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그는 “도요타의 성과급은 흑자액의 7%가 되지 않고 노조가 나서 임금 동결을 요구한다”며 “순익의 30%를 요구하는 선례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의 경쟁력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토로했다. 돈 문제뿐 아니다. 지난 2001년초 서울 힐튼호텔에서 열린 GM대우차(옛 대우자동차)의 `L6 매그너스 신차발표회`. 화려한 무대로 빛나야했던 이 자리는 대우자동차판매 노조원들이 진입을 시도하는 바람에 난장이 됐다. 워크아웃 상태였던 대우자판은 능력급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사간 갈등을 빚고 있었고, 투쟁의 장소를 과거 계열사의 신차 발표회장으로 삼아 경영진에 대한 압박 수단으로 이용한 것이다. 3년여의 협상끝에 대우차를 인수한 GM은 마지막까지 노조문제를 고민했다. 이런 상황은 현대차 임단협 협상에서도 묻어나고 있다. 노조는 사측에 신규사업이나 해외공장 이전 등 중요 경영사항을 결정할 때 노조와의 사전 논의를 거칠 것을 요구했다. 노조의 경영참여 요구다. 도요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권리`만이 아닌 `책임`내세울때 = 지난해 국내 자동차 업계의 노사분규로 인한 생산ㆍ수출 차질액은 1조970억원. 전체 산업의 생산ㆍ수출 차질액중 63.8%를 차지한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경영진이 확보한 리더십을 확보하고, 노사 양측이 공생의식 아해 합리적 시스템을 구축할 것을 주문한다. 주우진 서울대 경영대 교수는 “무엇보다 필요한게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고 강조한다. 국내 업계는 차량 주문이 아무리 밀려도 노조 반대로 다른 라인의 근로자를 재배치할 수 없다. `노동자의 천국`이라는 독일은 어떤가. 41년 연속 흑자와 18년 무파업이라는 대기록을 갖고 있는 BMW에 탄력적 근로시간과 근로의 유연성은 기본으로 깔려 있다. 노조에 대한 경영진의 인식 전환도 선결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노조에 대한 일방적 비판에 앞서 경영의 진정한 파트너로 노조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성숙돼야 한다”며 “경영진이 소유와 경영의 투명성을 최대한 확보해 나간다면 뿌리깊은 악순환의 고리도 단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계의 한 원로는 “2010년이면 국내 자동차산업도 진정한 글로벌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다”며 “이때까지라도 노사가 상생의 길을 도모할 수 있는 대타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경영전략연구소(IMD)가 평가하는 노사관계 경쟁력 47위(모집단 48개국),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첫 단추는 자동차산업 노사문화의 선순환으로부터 꿰야 한다는 것이다. [치유되지 않는 노ㆍ노 갈등]노사 타협해도 조합원투표 부결 일쑤 “출고대기일이 2~3개월 이상 걸릴 정도로 주문이 밀려 있습니다.”(5t 트럭 생산라인) “한달치 가량 재고물량이 쌓여있어 생산을 조절하고 있습니다.”(2.5톤 트럭 `마이티` 생산라인) 현대자동차 전주공장의 요즘 풍경이다. 어떤 생산라인은 땀방울을 닦아낼 시간조차 없이 모든 사람들이 달라붙어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데 어떤 라인에선 충분히 여유로운 모습들이다. 이런 풍경이 벌써 몇 달째 이어지고 있다. 상식적으론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이 같은 생산시스템이 이곳에선 비일비재하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핵심은 라인간 인력조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노조대의원들 스스로 라인간 인력 교환을 막아 놓았다. 5톤트럭 종업원들 입장에선 특근을 통해 수당을 챙길 수 있는데, 라인 조정이 이뤄지면 당장 손에 쥘 현찰이 줄어든다. 밥그릇을 둘러싼 이해다툼, 이는 생산현장 내부에 깔려 있는 해묵은 갈등의 근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회사로서도 기회비용이 너무 들어가 라인합리화를 하고 싶지만 속수무책이다. 노ㆍ노간 이해다툼에 회사가 개입하는 모습이 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갈등은 임단협 협상과 노조 선거때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동차업계에서는 노사간의 수개월 동안 진통끝에 협상을 타결지어도 조합원 투표에서 일단은 부결되는게 요식행위가 됐다. 노조내 계파 문화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현대차 노조에는 현 이헌구위원장이 속한 `민노투`외에도 8개의 계파가 더 있다. 노조위원장 선거 때마다 이들 계파 사이에는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할 정도로 열기가 대단하다. 기득권 다툼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사 협상 결과에 쉽사리 찬성표를 던진다는 것은 반대파 입장에선 결국 내목에 칼을 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감정대립은 원천적 해결이 불가능할 정도로 골이 깊어졌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처럼 정규직, 1차 하청노동자, 최하위인 2ㆍ3차 하청 노동자가 있다”(5월 19일 현대차 노조계시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현대차의 한 임원은 “노사문제는 협상으로 풀면 된다. 하지만 노노 갈등은 회사 입장에서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며 “노사간 상생 관계를 만들기 위해선 노노 갈등이 우선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떻게 풀것인가] 최소 3~%년 무분규 절실 `올해가 천당과 지옥의 분기점이다` 전문가들은 우리 자동차 산업이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지 여부가 올해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참여정부 등장후 처음 열리는 이번 노사협상 결과에 따라 산업의 미래가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며 “글로벌 리더로의 도약을 위해서라도 최소 3~5년동안 무분규가 절실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이 말하는 노사협상 방향을 3가지로 요약한다. ◇이익의 분배 개념 재정립 필요=김소림 자동차공업협회 이사는 “자동차 산업의 현실을 감안할 때 이익을 소득의 재분배 관점에서만 바라보면 안된다”며 “노동자나 사용자 모두 벌어들인 돈을 나눠 먹자고 덤벼드는 의식을 우선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료전지 등 미래형 자동차 개발을 위해 엄청난 자금이 필요하다”며 “노조도 중장기 생존을 위해 투자ㆍ개발을 위한 종잣돈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 개입 최소화=지난 98년 5월19일. 현대차는 8,189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방침을 노조에 통보했다. 정리해고법 통과후 첫 해고가 단행되는 순간이었고, 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다. 여당은 부랴부랴 중재단을 울산에 내려보냈다. 현대차 노사는 200명만을 줄이기로 합의했다. 정치권 개입으로 결정된 노사타협의 산물이었지만 정리해고를 단행해야 했던 당초의 취지나 목적은 이미 사라졌다. A그룹 노무담당 임원은 “정부와 정치권이 지나치게 나설 경우 노조의 입장을 들어주게 돼 있다”며 “정부는 법의 테두리를 벗어날 때만 중재하는 `감시자`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고 주문했다. ◇극단은 피해야= 올해 임단협은 그동안의 노사문화 흐름을 살펴볼 때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으로 우려된다. 특히 올해는 ▲주 40시간 근무 ▲산별 노조 ▲경영참여 등 하나하나가 모두 `핵폭탄`같은 사안들이 대기하고 있어 임단협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뜨거운 쟁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파업`이라는 극단적 방법은 피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노사 모두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대승적 자세를 견지해 앞으로 3~5년 동안 무분규를 끌어낼 수 있는 신뢰의 기류를 만들어야만 `글로벌 톱5`의 기반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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