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휴가철이면 소설이 인기를 끈다. 시원한 휴양지에서 골치 아픈 일상사를 뒤로 하고 기분 전환할 책으로 소설 만한 게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좀처럼 찾기 힘들었던 소설. 요즘 종합 베스트셀러 20위권 안에 예닐곱 개나 오르내린다. 반갑게도 우리 작가 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우리 문단에 벼락같이 내린 축복이란 찬사를 받은 김훈의 '남한산성'과 신경숙의 '리진'에 이어 황석영의 '바리데기'가 단행본으로 발간되자 마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최근 한 인터넷 서점이 실시한 '노벨상에 추천하고픈 국내 작가' 설문에서 독자들은 황석영을 1순위로 꼽았다. '한씨 연대기' '삼포가는 길'에 이어 '장길산''무기의 그늘''오래된 정원' '객지' '심청' 등 굵직한 작품을 꾸준히 내놓았던 작가 황석영. 독자들이 그를 노벨문학상 추천 후보 '넘버 원'으로 택한 것은 2000년 이후 발표한 '손님'과 '바리데기'의 힘이 무엇보다 커 보인다. 2001년에 나온 손님은 한국의 걸출한 이야기꾼에 머물러 있던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끌어 올린 작품이다. 6ㆍ25 전쟁 중 벌어진 황해도 신천 양민 학살의 근원을 기독교와 공산주의라는 외세 '손님'으로 본 작가의 날카로운 소설적 상상력의 무대는 '심청'에서 동아시아 근대화 역사로 한발 더 나아가고 이어 바리데기에서는 세계로 훌쩍 도약한다. 우리 전통 설화를 소재로 한 소설 '바리데기'는 북한 청진에서 지방 관료의 일곱 딸 중 일곱째로 태어난 '바리'의 눈을 빌어 20세기 말과 21세기 벽두 세계사 격변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영혼, 귀신, 짐승과 소통하는 신비한 능력을 지닌 소녀 '바리'가 가족을 잃고 탈북한 뒤 중국을 거쳐 영국으로 건너가 정착하는 고난의 여정 속에서 북한의 비극적 현실과 탈북 문제, 서방과 이슬람 세계의 대립, 서방 세계에서의 제 3세계 난민 문제 등 다양한 세계사적 이슈들을 훑어 낸다. 바리데기의 매력은 민족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세계사적 소재로 넓힌 그의 시선 변화를 보는 즐거움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전통 무속 신화를 바탕으로 동양 샤머니즘 정서가 담긴 담백한 서사시적 문체가 흡인력을 발한다. 손님에서 살짝 엿보이기 시작한 새로운 작법의 소설 쓰기 움직임은 어느덧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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