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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 포커스] 임영록과 이건호… 도대체 왜 갈등 못 좁히나

삶의 이력·배경서 쌓인 자존심

도리어 화합에 아킬레스건으로


● 임영록 회장

엘리트 코스 밟은 모피아…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

● 이건호 행장

학자 출신에 네트워크 단단… 젠틀하지만 꼬장꼬장한 성향


KB사태 결론 어떻게 나든 한지붕 아래 있기는 힘들 것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갈등이 이렇게 커지기만 하는 것일까. 성격상 말을 섞기조차 싫은 것인가, 아니면 중간에 있는 참모진이 갈등을 부추기는 것인가.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 간의 내분이 전산 시스템 교체를 놓고 절정으로 치달으면서 금융계 인사들 사이에 가장 빈번하게 거론되는 말이 '왜'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석 중 하나가 바로 출신 성분과 성향이다. 이들이 단순히 다른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그 자리에 앉아서가 아니라 관료 출신과 학자 출신으로서 각각 성공 가도를 달리며 형성된 강한 자존심과 판이한 성향, 여기에 나름 갖고 있는 '뒷배경' 등이 이번 사태의 엉킨 실타래를 풀지 못하는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이다.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27일 "학자 출신들은 관료에 비해 조직 장악력이 떨어지고 이에 대해 일종의 콤플렉스도 갖고 있다"며 "이는 학자 출신 장관이 임명된 정부 부처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며 조직 내에서 관료와 학자 출신 간의 권력 다툼이 일어나는 주요 이유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반론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번 국민은행 내분 사태와 묘하게 들어맞는 얘기다.



실제 임 회장은 재무 관료로서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왔다. 재무 관료의 꽃인 금융정책국장과 차관보, 2차관을 역임하는 등 임 회장은 말 그대로 정통 모피아(옛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 코스를 밟았다. 그가 KB금융지주 사장에 이어 회장까지 올라선 것은 엘리트 관료로서 모피아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회장이 되는 데 일정 부분 역할을 한 인물들을 거론하기도 하지만 주변 인사들은 낭설이라고 일축한다.

어찌 됐든 임 회장은 본인 특유의 '조용하지만 차돌 같은 리더십'을 무기로 KB금융지주 회장에 올라선 후 지주와 은행 임원들은 물론 사외이사들에게까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은행장의 권한을 사실상 제한해왔다. 모피아 특유의 강한 추진력 또한 임 회장이 이번 전산 시스템 교체를 밀어붙인 배경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반면 이 행장은 정통 연구원 출신으로 다소 외롭게 성장해 은행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금융연구원에서 6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8년을 지냈다. 특히 금융연구원은 그의 이력을 차지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 이 행장의 이메일 주소에는 아직도 KIF(금융연구원의 영문 약자)가 들어 있을 정도로 금융연구원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다방면에서 입김을 행사하는 금융연구원 학자 출신인 그는 쉽게 타협하지 않는 학자적인 강성 기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계의 고위 관계자는 "이 행장은 매우 젠틀한 신사이기는 하지만 다소 꼬장꼬장하고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학자적인 성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자신과 고락을 같이 한 학자 출신 인사들이 금융계 핵심에 포진해 있는 점도 그의 자리를 강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출신 성분과 이력에서 비롯된 이 같은 판이한 성향 외에도 둘은 개인적인 스타일 자체가 상당히 차이가 난다. 양측과 모두 친분이 있는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이 적극적이고 때로는 다소 거친 용장 스타일이라면 이 행장은 내성적이면서도 온건하고 합리적인 스타일"이라며 "온건한 사람이 한번 들고 일어날 때는 무섭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행장은 그간 임 회장과의 불화설이 불거질 때마다 "회장과 한 달에 한 번씩은 식사를 하며 현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둘 사이의 관계는 지극히 형식적인 요식 행위였다는 것이 이번 사태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 금융계에서는 이번 사건이 외부로 표출되기 전에 지주와 은행의 수장이 왜 담판을 짓지 못했냐고 의아해하지만 양측의 관계는 애초부터 담판이 시도되기조차 어려운 관계였다는 것이다.

이 행장은 지난 26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 이후 임 회장과의 관계와 관련해 "친했다면 저에게 전화를 하셨겠죠"라고 말끝을 흐렸다.

이제 서먹하고 응어리가 가득했던 둘의 관계는 돌아설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의 조사가 어떤 식으로 결론이 나든 임 회장과 이 행장이 KB라는 한 지붕 아래 있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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