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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평] 과학자의 연애





그는 마차 를 보지 못했다. 비를 막기 위해 기울인 우산이 시야를 가렸다. 그렇게 달려오던 말에 치었고, 설상가상으로 마차에서 쏟아진 짐들이 그를 덮쳤다. 1906년 47세의 피에르 퀴리는 그렇게 허망하게 눈을 감았다. 마리 퀴리 부인의 나이 39세 때의 일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한 부부이자 든든한 연구 파트너였다. 예컨대 마리 퀴리는 꼼꼼하면서도 결단력이 있어 우라늄 광석에서 폴로늄(Po)과 라듐(Ra)을 분리해 새로운 원소로 확정하는 일을 맡 았다. 반면 피에르 퀴리는 느리지만 신중한 성격이었다.

그래서 방사선의 정체 규명이 그의 몫이었다. 두 사람과 관련해 1903년 스웨덴 노벨위원회가 노벨 물리학상 후보로 베크렐과 피에르퀴리를 지명했을 때의 일화도 유명하다. 아내마리 퀴리의 이름이 후보에서 빠져있다는 사실에 놀란 피에르 퀴리는 노벨위원회에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이 연구는 저와 마리 퀴리의 공동 연구며, 그녀가 한 역할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제가 노벨상을 받는다면 마땅히 마리 퀴리도 받아야합니다.” 노벨위원회는 이런 남편의 의견을 수용했고, 퀴리 부부는 그해 노벨 물리학상을 함께 수상했다.






이성과 감성, 과학과 사랑의 양립
그렇다. 이번에는 과학자들의 사랑이다. ‘과학자의 연애’는 인류의 지성사와 예술사, 정치사를 뒤흔든 연애 이야기를 다룬 ‘세상을 바꾼그들의 사랑’ 시리즈의 네 번째 책이다.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밀레바 마리치, 엔리코 페르미와 라우라 페르미, 제인 구달과 휴고 반 라윅, 앨런튜링과 남자들, 에밀리와 볼테르 등 6명의 과학저술가가 인류 과학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과학자 6명의 사랑과 삶, 그리고 그들의 내면세계를 이 책 한 권에 오롯이 담아냈다.

앞서 출간된 ‘철학자의 연애’와 ‘종교인의 연애’, ‘정치가의 연애’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과학자들의 연애담을 눈여겨보게 된 것은 이성의 집약체인 과학과 감성의 결정체인 사랑이 과연 양립할 수 있을까에 대한 개인적 호기심 때문이었다. 물론 그 호기심은 단순히 과학이나 사랑자체의 본질보다는 두 가치가 양립할 수 있게 만드는 가교를 찾고자하는 지적 호기심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질없는 기대였다. 숨겨진 우주의 법칙을 밝히고, 인류가 수백 년간 풀어내지 못한 난제들을 해결한 그들이었지만 연인의 마음만큼은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 숱하게 반복되는 실험으로 심신이 망가지는 극한 상황을 이겨냈음에도 사랑 앞에서의 그들은 우리처럼 조급했고 인내심이 없었다. 때로는 이성이 마비되기도 했다.

실제로 마리 퀴리는 폴로늄과 라듐이라는 원소를 발견했지만 사랑의 ‘반감기’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남편이 마차에 치여 사망한 뒤 물리학자 폴 랑주뱅과 새로운 사랑에 빠진 것. 피에르 퀴리가 그랬던 것처럼 랑주뱅 역시 연인이자 연구 파트너였다. 결정적 차이가 있다면 랑주뱅에겐 아내와 네 아이가 있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1911년 그들의 불륜이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우파 언론의 정치공세가 이어져 이른바 ‘소르본 스캔들’로 비화되기도 했다. 유명한 방정식 ‘E=mc2’을 고안하고, 현대물리학을 새로 쓴 아인슈타인 또한 ‘사랑의 방정식’에는 전병이었다. 좋은 과학자였던 것은 분명하지만 좋은 남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인슈타인이 과학계에 이름을 날리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아내 밀레바와의 관계는 급속히 멀어졌다. 그렇게 아인슈타인이 네 살 연상이자 이종사촌인 엘자와 가까워지자 밀레바는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면서 영원히 부부의 연을 끊었다.





과학에 대한 열정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주인공 앨런 튜링의 사랑은 더욱 비극적이다. 천재 수학자로 불리는 그는 남자를 사랑했다. 그리고 동성애자를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화학적 거세 판결을 받았고, 호르몬 주입에 의한 치명적 신체 변화를 겪게 된다. 그런 상황을 견딜 수 없었던 그는 1954년 6월 수학자답게 청산가리의 치사량을 계산해 사과에 주사한 뒤 먹는다. 당시 그의 나이 42세였다.

사람마다 사랑의 유형이 제각각이듯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다. 모든 과학자들의 사랑이 실패로 끝난 것은 아니다. 엔리코 페르미와 라우라 페르미는 스승과 제자 사이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했고, 평생 부부로 살았다.

비범한 기억력의 소유자였던 페르미는 늘 참고 문헌조차 뒤적이지 않고 막힘없이 물리학 이론들을 쏟아냈고, 라우라는 천재 물리학자의 입에서 쏟아져 나오는 암호를 일상의 언어들로 바꿔 종이에 적어 내려갔다고 전해진다.

두 사람에게 복잡한 방정식과 수학 기호들은 달콤한 밀어(密語)였고, 사랑의 세레나데였다. 이들의 사랑을 갈라놓은 것은 죽음이었다. 암 판정을 받은 페르미는 병실에 누워서도 정맥 주사액의 방울 수를 세고, 영양분과 수분의 공급량을 측정했다고 한다. 아내 라우라는 그녀를 위해 마지막 선물을 준비했다. 다름아닌 ‘원자가족, 엔리코 페르미와 함께한 나의 삶’이라는 책이었다. 죽는 순간까지 물리학자로 살았던 남편을 위해 자서전을 헌정한 것이다.

세계적인 영장류 학자인 제인 구달 박사는 어땠을까. 그녀에게 반 라윅은 믿음직한 동료였고, 연인이었다. 늘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사랑은 영장류에 대한 기존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의 자양분이 됐다. 18세기 철학자 볼테르와 에밀리의 사랑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불륜임에 틀림없지만 그들의 사랑은 욕망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과학적·문학적 재능을 넓혀준 필요충분 조건이었다.

앞서 언급한 소르본 스캔들은 마리 퀴리의 삶에 큰 생채기를 남긴다. 논란이 거세지자 노벨위원회가 마리 퀴리의 노벨상을 철회하려고도 했다. 노벨상 수상을 스스로 거절해줬으면 좋겠다는 편지를 받은 마리 퀴리는 이렇게 답장을 보낸다. “제가 보기에 당신이 조언해주신 행동은 심각하게 잘못된 것처럼 보입니다. 노벨상은 라듐과 폴로늄 발견에 대한 것입니다. 저의 과학 연구와 사생활은 전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연구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이 사생활에 대한 중상모략과 명예 훼손에 영향을 받는다는 생각을 저는 원칙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마리 퀴리를 버티게 한 힘은 사랑이 아니라 과학에 대한 열정이었던 셈이다. 이 점에서는 세기의 연인 중 하나로 불리는 장 폴 사르트르와 시몬느 드 보부아르의 사랑도 비슷하다. 당대 최고의 지식인이자 진보주의자답게 두 사람은 계약 결혼을 하고 평생을 동지로서, 연인으로서 살았다. 사르트르의 여성편력은 그의 사상만큼이나 유명했지만 보부아르는 그를 용서했다. 둘의 관계에서 육체는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것이다. 말년의 보부아르는 사르트르와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하기도 했다. “사르트르와 나 사이에는 늘 말이 있었어요.”

이 말을 응용해 과학자의 연애를 읽은 뒤 필자가 내린 결론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겠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늘 과학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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