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가 내년 인수합병(M&A) 시장의 복병으로 떠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와 올해 상장한 스팩 가운데 53개가 인수합병 대상 기업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29일 금융투자(IB) 업계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스팩은 45개에 달한다. 이는 26개의 스팩이 상장된 지난해보다 늘어난 수치다. 전체 공모 규모는 4,860억원으로 전년 대비 69.2% 늘어났다.
스팩은 비상장사의 합병을 위해 설립되는 일종의 '서류상 회사(페이퍼컴퍼니)'다. 스팩을 만든 증권사가 합병 기업을 찾고 주주총회를 거쳐 금융당국 심사까지 완료되면 새로운 이름으로 재상장하게 된다. 이 모든 과정이 스팩 상장 후 3년 안에 이뤄져야 하며 합병 기업을 찾지 못할 때는 해산된다. 올해 일반 기업과 합병을 결의한 스팩은 13개에 달한다. KB투자증권이 3개 스팩의 주인을 찾아줬고 NH투자증권과 교보증권도 각각 2개 스팩의 합병 대상을 발굴했다. 이에 따라 미합병 스팩은 53개가 남아 있다.
최근 상장되는 스팩이 급증하는 것은 증권사에서 수익성이 높은 사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비상장사의 상장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는 공모금액에 따라 일정 비율대로 수수료를 받는다. 하지만 스팩의 경우 상장 수수료뿐만 아니라 합병 자문료까지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힌다. 게다가 증권사는 스팩에 의무적으로 일정 지분을 투자하도록 돼 있어 기업 합병에 성공한 뒤 주가가 오르면 보호예수 기간(1년)이 끝나고 차익실현에 나서도 된다.
문제는 스팩과 합병이 가능한 우량 비상장 기업은 제한된 반면 스팩이 과도하게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1년 안에 합병 대상 기업과 논의를 마무리 짓고 심사 절차에 돌입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난해 상장된 미합병 스팩 11개는 내년 합병대상을 필수적으로 찾아야 한다. 올해 주식시장에 올라온 스팩도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스팩이 합병에 실패해도 일반투자자는 원금과 함께 1~2% 수준의 예금이자를 받을 수 있지만 많은 자본을 투자한 증권사와 발기인은 큰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올해 합병 대상 기업을 발굴했음에도 불구하고 심사 과정에서 자진 철회하거나 금융당국으로부터 퇴짜를 맞은 스팩도 5곳이나 된다. 이들은 모두 지배구조, 재무상황, 미래 사업전략 등과 관련해서 금융당국이 정한 상장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지난 4월부터는 스팩 합병 대상 기업은 외부감사인을 금융당국으로부터 지정 받도록 한 제도도 시행됐다. 금융당국의 심사 기준이 점차 까다로워지면서 증권사가 적당한 스팩 합병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보다 어려워질 수 있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코넥스시장 상장법인 가운데 경쟁력이 있는 기업을 발굴하려는 움직임이 확산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도 닉스테크·정다운 등 2곳의 코넥스 상장사가 스팩과의 합병을 결의했다. 코넥스 상장법인이 스팩과 합병하면 상장 심사기간이 45영업일(9주)에서 30영업일(6주)로 크게 단축되기 때문에 이전 상장 통로로 적극 활용되는 추세다.
한 증권사의 고위관계자는 "스팩 시장에서 경쟁이 점차 격화되고 금융당국의 합병 심사 문턱도 높아진 만큼 내년부터는 우량 비상장사를 발굴하기 위한 증권사 간 피 튀기는 싸움이 전개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민구기자 mingu@sed.co.kr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