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문책 받으면 임원 못돼… 면책조항 확대를
③ 당국 여신공급 규모 규제 말고 자율성 부여
④ 수수료 합리화… 비이자 수익 늘릴길 터줘야
⑤ '기술금융 = 금융권 실물지원' 인식 변화 필요
지난 22일 박근혜 대통령은 부산을 찾아 은행들이 창조적 기술금융에 나서면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경기활성화 등의 차원에서 금융계 보신주의 타파에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장면이다. 최근 시중은행들도 각종 중소기업 지원책 등을 발 빠르게 내놓는 등 표면적으로는 이런 정부 움직임에 화답하고 있다.
하지만 시중은행 여신담당 부행장들은 기술금융 확대 등에 극도의 신중함을 드러냈다. 특히 금융 보신주의를 깨기 위해서는 규제개혁 등 제도적 혁신과 금융에 대한 인식전환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①금융권 '순혈주의' 타파해야=은행 임원들은 "기술금융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술에 대한 평가능력과 기술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전문 인재가 금융권 안에서 성장할 수 있어야 결국 기술금융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 지금처럼 은행을 비롯해 금융 당국마저 순혈주의에 매몰된 상황에서는 본질적으로 기술금융 확대가 어렵다고 봤다. 실제 국책은행을 중심으로 일부 은행들이 정부의 기술금융 확대에 장단을 맞추고 있지만 대부분의 은행들은 겉핥기 수준이다. 최근 변리사 등을 채용해 기술금융 전담부서를 만든 곳도 있지만 급조된 티가 역력하다. 한 시중은행 고위임원은 "기술평가 능력을 발전시키려면 내부 인력만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며 "이공계 등 외부 인력이 은행이나 금융 당국에도 자연스럽게 영입되고 그들이 조직에서 성장할 수 있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②감독 당국 면책조항 합리적 확대=은행은 속성상 보수적일 수밖에 없지만 '필요 이상'으로 보수적이 되는 것은 감독 당국의 사후적 검사 및 제재에 대한 부담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장은 이와 관련해 "감독 당국에 혼날 것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기 스스로 책임을 지고, 위험을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어야 은행의 경영 방식이 확실하게 진취적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불법이나 위조 등을 제외한 부실 대출 등에 대해서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점검하고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금융 토양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은행의 여신 담당 임원도 "문책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여신에 대한 전결권을 갖고 있는 지점장급인데 문책을 한번 받으면 당연히 임원을 꿈도 못 꾼다"며 "여신과 부실에 대한 면책조항을 늘려주는 것이 보신주의 혁신을 위한 가장 중요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③성과주의식 정책 지양=은행 임원들은 '대통령의 한마디→금융 당국의 과도한 의욕→은행에 대한 채찍질' 로 이어지는 성과주의식 모델을 우려한다.
한 시중은행장은 "금융권 보신주의 비판이 지목하는 것은 저신용등급에 대한 여신인데 모든 기업에 동일한 잣대로 여신공급 규모를 정하거나 일정한 목표를 부여하는 것은 맞지 않다"며 "그런 것은 은행의 자율성에 맡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은행장도 "정부가 제도 또는 목표를 만들어놓고 그 틀 안에서 대출을 하라고 하면 은행은 그에 맞춰 최대한 보수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무조건 닦달할 것이 아니라 은행 스스로 자신들의 은행에 가장 맞는 기술금융이 무엇인지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④은행 수익 개선책 물길 터줘야=기술금융 확대 등 달라진 여신정책은 은행 입장에서는 예전 지도에 없던 새로운 길이다. 이런 변화가 자리잡기 위해서는 그 기간에 은행이 안정적 수익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저금리가 장기화되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다시 인하하면서 은행들은 이제 막 회복세를 보이던 순이자마진(NIM) 하락세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연이은 수신금리 완화는 은행권의 고객 이탈로도 이어지고 있다. 기술금융 등에 적극 나서려면 결국 수수료 합리와 등을 통해 은행 수익성을 회복해줘야 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당국의 '그림자 규제'는 건재한다. 한 시중은행장은 "은행은 반드시 적정한 이익을 내야 글로벌 스탠더드를 맞출 수 있고 외화조달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며 "은행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를 허용해 조금씩이라도 비이자수익을 늘려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⑤'은행 여신=기업지원' 인식 바꿔야=대출은 반드시 약속한 기간 안에 이자와 원금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엄밀히 말해 지원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맞지 않다. 기술금융도 결국 기업뿐만 아니라 은행의 수익성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돼야 꾸준히 발달할 수 있다. 한 여신담당 부행장은 "은행의 여신을 투자 개념과 같은 맥락으로 보면 안 되며 그런 부분은 여신이 아닌 펀딩이나 정책자금이 나서야 한다"며 "기술금융을 무조건 금융권의 실물 지원이라고 생각하는 인식부터 바꿔야 기술금융이 성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 시중은행장도 "은행이 한번 망가지면 나라가 망가진다"며 "은행 수익 안전성을 훼손하는 선까지 기업에 대한 지원을 요구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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