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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20세기 바둑사 최대 사건은 '신포석' 창안
입력2000-02-01 00:00:00
수정
2000.02.01 00:00:00
최형욱 기자
국내 전문가들은 20세기 바둑사에서 최고의 사건으로 우칭위엔(吳淸源)과 기타니 미노루(木谷實)의 신포석 창안을 꼽았다. 「월간바둑」 2월호는 「20세기 바둑사 10대사건」을 선정하면서 이같이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는 한국 관련 소식이 순위를 많이 차지했는데 국내 조사라는 한계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바둑의 비약적인 성장을 실감하게 한다.◇반상의 지동설, 신포석 창안= 1930년대 두사람의 천재기사에 의해 등장한 신포석은 단순한 포석이론이 아니다. 그것은 3선 위주의 포석, 집 중심의 사고에 머물던 수백년 동안의 바둑관념 자체를 바꿔놓았다.
신포석은 포석의 기초를 4·5선으로 확대시켰을 뿐만아니라 세력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두터움과 엷음에 대한 안목을 넓혔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중국식 포석」이나 다케미야 마사키(武宮正樹)의 「우주류」 등도 신포석의 개념을 구체화한 것에 불과하다. 신포석은 현대바둑의 출발점인 셈이다.
◇현대기전의 효시, 혼인보(本因坊)전 창설= 1939년 마지막 세습 혼인보였던 슈사이(秀哉)는 400여년간 일본바둑의 정상이던 혼인보를 세습이 아닌 경쟁에 의해 결정한다고 발표했다. 대회방식도 혁명적이었다. 당시까지 권위의 상징이던 단위를 무시한 채 총호선으로 두고, 흑에게 덤을 부과하기로 한 것이다.
◇반상의 세계화, 응씨배 창설= 대만의 재벌 잉창치(應昌期)는 88년 최초로 국제대회를 창설했다. 당시 주최측은 중국 4명, 일본 6명, 대만 3명의 기사를 16강전에 초청했는데 한국은 조훈현(曺薰鉉)9단 단한명의 기사뿐이었다. 호주(1명), 미국(1명) 기사들과 똑같이 취급한 것이다. 그러나 조9단은 이런 악조건을 뚫고 초대 타이틀을 차지했다.
◇한국바둑 4대기전 제패, 천하통일= 93년은 한국바둑 최고의 해였다. 2월 국가대항전이던 진로배에서 우승한데 이어 서봉수(徐奉洙)9단이 5월 응씨배에서 우승했고, 6월에는 이창호(李昌鎬)9단이 대선배 조치훈(趙治勳)9단을 꺾고 동양증권배를 차지했다. 8월 후지쓰배에서는 조훈현9단과 유창혁(劉昌赫)9단이 한국기사끼리 타이틀전을 벌였다. 이에따라 일본·중국에 머둘던 바둑 판도가 한·중·일 3각 구도로 반전되었다.
이밖에 1924년 일본은 물론 세계 바둑을 융성시킨 「일본기원」 발족과 한국바둑의 모태가 된 「한성기원」의 설립은 5·6위에 올랐다. 또 1938년 일본 혼인보전에서 4집이 적용된 이래 현재 6집반이 대세를 이루는 「덤」 제도의 채택은 7위를 차지했고 「세계최초의 바둑전문 채널 바둑TV 개국」, 「세계최초로 명지대 바둑학과 탄생」, 「사이버바둑의 확산」 등이 그뒤를 이었다.
최형욱기자CHOIHU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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