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컴퓨터가 100년에 걸쳐 계산할 양을 단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는 혁신적 컴퓨팅 기술이 등장했다. 바로 양자컴퓨팅이다. 양자컴퓨팅이 만들어갈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최근 실리콘밸리는 ‘양자컴퓨팅(원자의 양자 역학적 효과를 기반으로 방대한 용량과 초병렬 계산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컴퓨터)’ 기술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구글과 미항공우주국(NASA)은 오래전부터 캐나다 벤처기업 디웨이브(D-wave)가 개발한 양자컴퓨터를 도입한 연구소를 운영하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 인텔도 최근 네덜란드 델프트 공대 및 연구기관들과 함께 앞으로 10년간 양자컴퓨팅 분야를 연구한다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IBM은 수퍼컴퓨터 연구를 발전시켜 양자컴퓨팅 연구에 엄청난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구글은 양자컴퓨터를 활용한 인공지능 검색엔진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뉴턴 물리학의 주요 패러다임에 따르면, 물질은 최소 단위인 원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인간의 의식은 두뇌에서 일어나는 화학 작용의 산물이고, 존재하는 모든 것은 서로 분리되어 있어 두 개의 독립적인 개체는 어떤 신호를 통해서만 정보 전달을 할 수 있다. 또한 뉴턴은 우주가 정확한 역학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기계라고 믿었다. 이 같은 뉴턴 물리학 패러다임은 지난 300년간 대부분의 일상생활에 잘 들어맞는 적합한 모델로 기능하며 과학기술이 진보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왔다. 뉴턴 물리학은 지구 상의 모든 물질 운동과 우주 행성의 운동 법칙을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됐고, 인간을 달에 착륙시키는데에도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오며 양상이 바뀌었다. 빛과 소립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뉴턴 물리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실재(Reality)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1900년 초 막스플랑크와 아인슈타인은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격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는데 이것이 양자 물리학의 시작이었다.
현대 물리학의 두 축인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은 모두 아인슈타인으로부터 시작됐다. 아인슈타인은 광전효과(금속 같은 물질에 일정한 진동수 이상의 빛을 비췄을 때 물질의 표면에서 전자가 튀어나오는 현상) 이론을 통해 양자역학의 토대를 마련했지만, 정작 아인슈타인 스스로는 양자역학을 매우 싫어했고 죽을 때까지 이를 의심했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왜 불신했을까? 그것은 양자역학이 가지고 있는 우연과 불일치성, 확률의 개념 때문이었다. 양자역학의 세계에는 결정론과 인과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양자역학을 불신하면서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하기도 했다. 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만은 “양자 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으며, 닐스 보어는 “양자 역학을 처음 접하고 충격을 받지 않은 사람은 양자 역학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했을 정도로 이 분야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학문으로 받아들여졌다.
양자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얽힘(entanglement) 현상’이다. 두 실체는 늘 상호작용을 하면 서로 얽혀 있다는 것이다. 두 실체가 광자든 원자든, 아니면 먼지 티끌, 물체, 사람처럼 원자로 이뤄진 큰 물체든 마찬가지다. 이 실체들이 그 밖의 다른 어떤 것들과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한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얽힘 현상은 발생한다. 입자의 운동도 바로 이 얽힘 현상의 지배를 받는다. 얽힘 현상은 그 입자들이 상호작용을 할 때 시작되고, 얽히게 되면 입자들은 더 이상 고립된 존재가 아니게 된다. 서로 아무리 떨어져 있더라도 한 입자를 잡아당기거나 측정하거나 관찰하면, 마치 온 세상이 둘 사이를 잇기라도 한 듯, 다른 입자도 즉시 반응하는 것처럼 보여진다는 것이다.
양자컴퓨팅은 지난 1982년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에 의해 처음 제안됐다. 양자컴퓨터는 양자역학의 얽힘이나 중첩(superposition)현상을 활용한다. 기존 컴퓨터에서 정보의 기본단위인 비트의 상태는 0아니면 1이다. 그러나 양자비트 또는 큐비트(Qubit)라 불리는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는 0 과 1 두 개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사실 두개가 아닌 수 십 개, 수 백 개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바로 중첩현상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두 개의 큐비트는 4개의 상태 (00, 01, 10,11) 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얽힘 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3개 큐비트가 얽힐 땐 8개, 4 큐비트 땐 16개의 상태를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처럼 양자컴퓨터는 동시에 여러 개의 상태에 있을 수 있고, 동시에 모든 상태에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기존 컴퓨터와는 달리 동시에 수많은 계산을 수행할 수 있게 된다.
양자컴퓨터에는 기존의 0과 1을 번갈아 선택하는 이진법 기반 컴퓨팅 방식이 아닌, 여러 컴퓨터가 0과 1에 동시에 반응해 연산을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컴퓨팅 장치가 필요하다. 컴퓨팅의 속도가 비트가 아니라 큐비트로 측정되는 새로운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양자역학의 원리를 응용한 암호방식인 양자암호(Quantum Cryptography) 기술도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양자암호는 독일의 이론물리학자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를 응용한 암호화 방식이다. 양자의 중첩상태를 이용해 0과 1의 양쪽 값을 동시에 취하는 성질을 암호화에 이용하는 기술이다. 먼 거리에 있는 두 곳의 양자얽힘을 전송하는 과정에선 결어긋남(Decoherence) 현상도 일어나는데, 양자얽힘이 소실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기술도 현재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무어의 법칙(마이크로칩에 저장할 수 있는 데이터의 양이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한다는 가설)이 물리적 한계에 도달한 현 시점에서 양자컴퓨팅은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양자컴퓨터는 종전의 컴퓨터에 비해 처리량과 속도가 상상 이상으로 뛰어나다. 양자컴퓨터가 실용화되면 지금의 슈퍼컴퓨터가 100년에 걸쳐 계산해야 할 것을 단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다. 전 세계 기업들과 학자들이 이 같은 양자컴퓨팅이 열어줄 미래 세상에 관심을 집중하며 기술개발에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이유이다. 고속으로 방대한 데이터를 처리하는 양자컴퓨터를 활용하면 빅데이터, 기상이변, 우주현상, 생체정보, DNA 등에서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한 수 많은 문제들을 훨씬 더 빠르게 처리하고 분석할 수 있다. 튜링머신(Turing machine·순서에 따라 계산이나 논리 조작을 수행하는 장치)으로 출발한 지금의 컴퓨터가 바꾼 인류의 발전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아마도 양자컴퓨터는 지금의 컴퓨터, 그 이상의 변화를 인류에게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 양자컴퓨터가 만들어 가는 미래의 세상은 과연 어떨까? 다 같이 한번 기대해 보자!
안병익 씨온 대표는…
국내 위치기반 기술의 대표주자다. 한국지리정보 소프트웨어협회 이사, 한국공간정보학회 상임이사, 한국LBS산업협의회이사를 역임했다. 지난 2000년부터 2009년까지 포인트아이 대표이사를 지냈고, 지난 2010년 위치기반 사회관계망서비스 씨온을 창업해 현재 운영 중이다. 건국대학교 정보통신대학원 겸임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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