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5년 내 상당수 증권사가 물갈이되고 지금의 증권업은 완전히 새로운 사업모델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미래에셋증권이 지난 24일 대우증권의 인수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직후 국내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는 혁신에 한 발짝만 뒤처지면 낙오하고 퇴출될 수 있다는 절박함을 표했다. 투자은행(IB)과 위탁매매, 자산관리(WM) 등 증권업 전 부문에 걸친 압도적 1등 증권사의 출현도 시간문제지만 핀테크에 로봇·빅데이터 등이 금융업의 판을 뒤흔들 변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는 업권 파괴 속에 은행·보험·카드 등과도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이 다가옴에 따라 융·복합화와 소프트파워 확대에 공을 들이고 있다.
카카오톡 '증권플러스'로 유명한 두나무는 자문사를 분사해 내년 초 증권플러스 형태의 자문사 플랫폼을 공개할 예정이다. 개인투자자가 다양한 자문사들의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고 수익률이 좋은 곳을 선택해 소액투자를 하는 신사업 모델이다. 주식거래를 증권사 홈트레이딩서비스(HTS)가 아닌 카카오톡을 통해 전문 자문사에 일임하는 것이다. 배성우 두나무 투자일임 대표는 "대형 증권사라도 카카오 같은 국민 대다수가 사용하는 플랫폼을 만드는 것은 무척 어려워 이 부분에서 독보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투자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지만 기존 증권사들은 적잖은 고객을 뺏길 수 있다.
핀테크가 활성화할수록 '두나무'와 같은 사례는 갈수록 늘어나고 업종 간 칸막이는 크게 낮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카카오뱅크는 24시간 자산관리를 상담할 수 있는 '금융봇'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금융봇은 인공지능에 기반한 대화형 고객 서비스를 표방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을 중심으로 낮은 수수료로 고객 몰이를 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도 내년에는 보편화할 것으로 보인다. 로봇과 상담사의 합성어인 로보어드바이저는 인공지능을 이용해 투자자별 맞춤형 조언과 포트폴리오 구축을 도와줘 개개인이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받게 된다. 대우증권과 NH투자증권이 초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지만 내년 도입이 유력한 독립투자자문업자(IFA) 제도와 결합하면 폭발력이 커 여러 증권사들도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경쟁자는 속속 늘어나는데 기존 수익모델만 고집하면 시장에서 설 자리가 없게 돼 증권사들도 앞다퉈 융합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특히 올 초부터 금융당국이 증권·은행 간 칸막이 규제를 완화해 각 금융사마다 복합점포 설치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까지 신한금융지주를 제외하고 이렇다 할 복합점포가 없었지만 1년 사이 80개 이상이 늘어났다. 이준규 신한PWM 프리빌리지 PB팀장은 "은행과 증권 양쪽의 고객정보를 활용하는 등 업무 효율성이 높아졌다"며 "아직은 은행에서 내놓는 상품에 대한 수요가 높지만 저금리 기조 속에 주가연계증권(ELS) 등 투자상품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2011년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가 결합한 신한PWM은 1호점 개점 이후 신한금투 예탁자산만 1조원 넘게 증가했다.
은행·증권 간 융합은 지주사만 시도하는 것은 아니다. 올해 4월 삼성증권과 우리은행은 우리은행 본점 영업부 등 3곳에 금융복합센터를 세웠다. 6개월 만에 우리은행과 삼성증권 간 교차거래가 1,000억원에 이른다. 앞으로 삼성증권과 우리은행은 울산 등에도 복합점포를 설치할 예정이다. NH투자증권도 농협은행과 함께 서울 광화문·여의도·삼성역센터와 분당 등에 4개의 복합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개점 1년이 안돼 광화문센터만 관리자산이 4조5,174억원 늘어 내년에는 부산 등을 시작으로 전국으로 복합점포를 확대할 계획이다.
복합점포에 문화와 빅데이터 영업을 가미하며 회사의 소프트파워 강화에 경주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내년 중 완공할 서울 삼성동 하나금투 복합금융센터는 영업점에 서점과 카페, 연예 기획사 스튜디오 등이 함께 자리할 예정이다. 전병국 하나금투 청담PB센터장은 "단순히 고객의 투자성향만 파악해서는 증권업을 지속할 수 없게 될 것"이라며 "소비패턴과 문화코드 등 고객의 생활 속 빅데이터를 파악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종호·지민구기자 joist1894@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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