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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용천참사 이후 남북관계
입력2004-04-30 00:00:00
수정
2004.04.30 00:00:00
북한 용천 폭발 참사는 역대 세계의 그 어느 대형 열차사고 피해보다 큰 희생과 손실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인명피해상으로는 지난 81년 6월6일 인도 비하르 지역에서의 다리붕괴 및 열차추락으로 800명이 사망한 사건이 최대의 열차사고로 기록돼 있다. 이번 용천사태는 현재까지 200명 이내의인명피해를 기록하고 있지만 1,850가구의 가옥이 파괴되면서 매몰 내지 실 종된 사람들의 희생이 잇따를 것이며 1,300여명의 부상자들 중 위독한 환자가 다수 포함돼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후속 피해 요인이 도사리고있다. 또한 수천명이 화학약품에 노출되면서 후유증이 수년간 계속될 수도 있고 사고지역의 불결한 식수와 열악한 임시주거 환경으로 인해 전염병이번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사태를 슬퍼하며 구호지원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추가적인 피해를 줄이고 시설복구에 도움을 주는 일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대응에 더해 이번 사태가 가져올 북한 자체에 대한 파장과 나아가 당면한 북한 핵문제 및 남북관계의 향방에 대해 진단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대북정책은 동포애로부터 비롯된 감성주의와 한국의 안보 및 통일정책에서 기인한 이성주의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데 그 덕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사고의 규모와 피해의 심각성에 비춰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국 제사회의 도움을 청했지만 수습과정에서 주민들의 결속이 와해되고 체제불 안이 노출되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27일 개성에서 열린 남북한간 구호회담에서 북한이 제시해온 요청품목만 보더라도 시멘트ㆍ불도저ㆍ디젤유 등 1차적인 응급대책용이라기보다는 2차적인 시설복구 작업에 관련된 것들이다. 평양 순안공항, 평북 용암포 등 관문을 개방하는 제안을 일축했고 북측 주민들과의 접촉이 가능한 남측의 인력지원 제안에 대 해서도 “인력이 충분하다”며 거절했다. 육로와 항공 운송이 불가능해졌으니 구호물자는 꼬박 이틀이 넘게 걸리는 선박운송을 통해 전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이번 용천사고의 원인은 단순한 실수나 우발사고로 치부될 수 없는 열악한 사회간접자본과 수송체계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정일국방 위원장은 그러한 문제점을 이미 직시하고 개혁ㆍ개방의 절대적 필요성을 어떻게 충족시켜나가야 할 것인지를 물으러 베이징에 다녀온 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필 그러한 전환점의 시기에 용천이라는 철도ㆍ육 상ㆍ해상 운수의 요지에 사고가 발생함으로써 대륙으로의 수송망이 마비되 고 추진해보려던 경제개혁 속도에도 제동이 걸렸다는 점은 분명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이만큼 큰 충격적인 악재로 말미암아 북한 지도부가 자신의 사회에 대한 문제점을 더욱 절감하고 보다 실질적인 개혁방안을 선택하도록 하는 계기가 된다면 어떨까. 개혁이 불가피하 게 동반할 체제노출 가능성에 대한 지나친 염려와 집착이 더이상의 구실이 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할 때다.
잇따르고 있는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은 북한의 그러한 인식변화를 도모하는 데 기여하도록 방향이 모아져야 한다. 주요 국가들을 비롯해 유엔아동기금(UNICEF)ㆍ유엔개발계획(UNDP)ㆍ세계보건기구(WHO)ㆍ국제적십자연 맹(IFRC) 등의 국제기구들이 제공하는 물적ㆍ인적 지원활동은 비정치적인차원에서 순수하게 이뤄짐으로써 국제사회에 더불어 동참해야겠다는 공감대를 평양에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미국이 현금 10만달러와 의료 지원을 순수한 인도적 견지에서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힘에 따라 핵문제로 장기간 대치상태에 있는 양국관계의 해소에 기대섞인 전망도 나오고 있 다. 이에 한국정부는 남북교류의 지속과 한반도 평화정착이 북한의 핵 포기를 기점으로 비로소 궤도에 오를 수 있음을 북한측에 계속 확인시켜야 한다.
인권문제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북한에 지금 넘쳐들고 있는 인도주의적지원이 북한정권의 세계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인가. 이제북한의 깨달음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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