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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도 방지 협약의 모순(사설)
입력1997-04-23 00:00:00
수정
1997.04.23 00:00:00
「부실 징후 기업 정상화를 위한 금융기관 협약(부도 방지 협약)」이 정식 발효됐다. 대기업 부도 방지를 위해 만들어진 이 협약의 첫 구제 대상으로 진로그룹이 지정됨으로써 진로그룹은 자금난으로 인한 도산위기에서 벗어나 회생 가능성이 커졌다.경제 난국 아래서 기업이 쓰러지는 것을 막고 회생 가능한 길을 모색하겠다는 노력은 바림직하다. 그렇지 않아도 한보·삼미부도로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는때 또 다른 대기업이 부도로 쓰러진다면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기업이 망하면 은행도 같이 위험스러워지게 되고 대외신인도나 국민적 불안감도 더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기업을 살리기 위한 조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번 부도방지 협약에는 중대한 모순이 함축되어 있다. 정부는 시장경제와 자율 원칙을 지향하고 강조해왔다. 개별기업의 진입과 퇴출은 시장원리에 의해 스스로 조정되도록 하고 은행이 자율 처리토록 간섭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그동안 많은 한계기업이 도태됐고 건실한 기업도 정부나 은행으로부터 외면당한채 일시적 자금난을 견디다 못해 쓰러졌다.
그러던 정부와 은행이 원칙을 깼다. 정부가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고 은행은 자율을 포기, 관치아래로 끌려들어갔다. 부실기업 정리 정책이 군사정권시절의 그것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첫 수혜 대상이 소비재중심 기업이라는 점이 명분을 희석시킨다. 삼미같은 기간산업도 부도를 내 쓰러뜨렸다. 그러면서 소비재 중심의 기업을 살리기 위해 특혜조치를 서두르는 것은 명분 있는 조치라 할 수 없다.
더욱이 한보사태이후 경영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는 때다. 금융기관의 자금에 의존해서 경영을 하면서 문어발확장을 서슴지 않는 풍토는 고쳐져야 한다. 여기에는 금융기관도 책임을 나눠져야 할 것이다.
부실방지 협약에 부작용도 적지 않다. 제2금융권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제2금융권의 운용자금은 단기자금인데 빚은 받지 못하고 갚기만 해야 할 형편이니 반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은행 따라 기업 부도 막아주려다가 단기금융기관이 부도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제2금융권이 대출을 기피하고 부도 징후 기업에 미리 환수조치를 서두르는 바람에 자금난이 가중되고 중소기업의 부도 위험은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대기업은 앞으로 은행 빚을 더 많이 지려 할 것이다. 은행빚이 적으면 쓰러져도 방치하고 빚이 많으면 정부와 은행이 부도를 내지 않고 회생책을 쓸 것이라는 기대감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부도위기의 기업을 살리는 데는 자구노력이 앞서야 마땅하다. 자구에 한계가 있으나 회생시켜야 할 기업이라면 현행 제도인 법정관리를 선택하는 것이 순리다. 특정 기업을 살리기 위해 특혜시비가 뻔한 새 조치를 만들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번 부도방지 협약이 한시적 응급책으로 이해되지만 문제점을 보완, 정책의 원칙과 금융자율성을 더이상 손상하지 않고 건전한 기업풍토를 조성토록 합리적으로 운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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