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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숭동 마로니에공원에 있는 붉은 벽돌건물의 아르코미술관이 변했다. 입구와 창문등 외벽이 두터운 색깔비닐의 ‘바코드’로 설치됐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흑백의 바코드와 달리 형형색색의 띠 바코드로 둘러쳐진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30여개의 대형 걸개 천으로 된 또다른 바코드 설치물 사이를 통과하게 된다. 이것은 국내 설치작가 1세대로 불리는 양주혜(50)씨가 미술관 내 외부를 모두 전시공간으로 활용하여 자신의 바코드 작업으로 펼쳐보인 것이다. ‘길 끝의 길’이라는 제목으로 28일부터 선을 보이는 이번 전시는 그의 작업 25년을 중간 결산하는 것이다. 양씨는 일상용품 표면에 붙어있는 바코드가 빛에 의해 읽혀지는 현상자체에 관심을 가졌다. 작가는 빛의 흔적이 어떤 물건의 정체성을 규정한다고 여기고 건물 외부의 유리벽면에 다양한 형태의 바코드 작업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평면작업에서 벗어나 작품 안과 밖을 관람객들이 들어가고 나가는 체험을 하게 한다. 대형 캔버스에 색점을 찍어나, 건물이나 건축 공사자의 가림막에 미술을 덧 입히는 작가로 잘 알려진 양씨는 흉물스러운 건물 공사현장을 아름다운 색점이 찍힌 가림막으로 가려 예술로 만들고 현대 문명의 상징이지만 곧 없어질지도 모르는 바코드를 이용한 설치작업으로 잘 알려진 작가다. 2003년에는 광화문의 문화관광부 청사를 무지갯빛 색점이 찍힌 천으로 감쌌고 비슷한 붉은 벽돌 건물 사이에 있는 동숭동의 아르코 미술관 외벽을 미술단체 주소가 인쇄된 알록달록한 띠로 뒤덮기도 했다. ‘길 끝 의 길’이라는 전시회 제목에 대해 작가는 “살아오면서 길이 어딘지 잘 모르겠더라”며 “지나온 작업의 길을 되돌아보면서 또다른 길의 출발점에 서 있는 나 자신의 상황을 의미하는 말”이라고 소개했다. 또 “언젠가는 오케스트라의 연주 속에 대형 프로젝션을 이용해 설치 작업을 하는게 꿈”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작가의 색점 작업은 프랑스 유학시절 시작됐다. 홍익대 미대 조소과 2년을 마치고 마르세유 뤼미니 미대에 다닐 때 언어 장벽에 막히자 사적인 기록인 일기에는 24가지 색깔에다 알파벳 A,B,C를 부여해 글을 썼고 혼자 그 기호를 해석해 냈다. 전시는 2006년 3월까지 계속된다. (02)760-4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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