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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과 비통의 쌍곡선

서해교전이 일어난 때는 6월29일 상오 10시 15분이다. 해전은 25분만에 끝났다. 해군 사상자 24명이 나온 혈투였다. 세계축구연맹은 돈방석에서 놀고 24명의 선수들은 잔디밭에서 뛰는 월드컵 축구 전쟁과는 생판 다른 실전이었다. 전사상자 24명이라면 한 경기에서 대결하는 양쪽 선수를 합친 숫자와 똑같다. 토요일인 그 날은 월드컵 준결승전이 벌어진 날이기도 했다. 한국-터키 전은 서해교전이 끝나고서 9시간 20분이 지난 저녁 8시부터 시작했다. '대~한민국 군중'은 3.4위 전의 승리를 위해 붉은 악마의 응원 열기에 휩싸였다. 여간해선 다른 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상황이었다. 일요일인 다음날도 결승전이 일본에서 열려 시선은 모두 그것에 쏠렸다. 한국 언론은 월드컵 4강의 성과에 과잉 탐닉하여 확대재생산과 확대재재생산을 하는데 여념이 없어 보였다. 특히 텔레비전은 서해교전이라는 급박한 안보환경을 주요한 의제로 올리는데 지체하는 듯 했다.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우승배를 거머쥔 뒤에 이어진 어느 텔레비전 뉴스의 머리기사는 서해교전이 아니라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이었다. 텔레비전이 스포츠와 공생관계를 맺고 이른바 '매체행사(미디어 이벤트)'를 연출하는 실상이 잡히는 대목이다. 월드컵 행사가 마감된 지 여러 날이 지났건만 텔레비전을 필두로 한 언론은 월드컵을 둘러싼 최상급 용어를 지나치다 싶게 많이 쏟아내고 있다. '신화창조' '단군이래 최초' '사상 처음'따위 표현을 귀가 아프게 틀어대고 있다. 주초에 광화문 특설무대에서 열린 '월드컵 성공 국민대축제, 대∼한민국' 행사는 대조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손수 히딩크 감독에게 체육훈장과 명예국민증을, 선수들에게 체육훈장을 수여하자 관중의 열광은 최고조에 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던 일요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아서 서해교전 전사자와 실종자의 훈장추서식을 연 것은 이한동 총리와 국무위원들이었다. 다음날 영결식이 열렸으나 대통령도 국방장관도 국무위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대통령은 월드컵 폐막식에 참석하러 일본에 가있었고 총리와 장관들은 '해군장'의 장례위원장이 해군참모총장이어서 의전 관례상 불참했다고 한다. 유족의 비통한 오열은 월드컵 4강의 '영광과 열광'에 묻혀 버렸다. 안병찬(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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