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중상위권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김모(23)씨는 지난 2월 결국 취업에 실패한 채 졸업했다. 수십 군데에 원서를 냈지만 면접 기회조차 몇 번 잡지 못했다. 취업 재수의 길로 들어선 그는 지난달 부모님에게 무거운 마음으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머리를 조아렸다. 반면 서울 중위권 대학 전자공학과를 나온 박모(25)씨는 대기업만 여러 군데를 합격한 뒤 결국 반도체 회사인 S사에 입사했다. 졸업 동기 중 대학원 진학자를 제외하면 취업에 실패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이공계와 인문계 졸업생의 진로가 명확히 갈리는 셈이다.
국내외 산업계 혁신 리더뿐 아니라 최근 취업시장에서도 이공계의 강세가 맹위를 떨치고 있다. 산업구조가 최첨단 위주로 재편되면서 연구·개발(R&D) 인력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과거 상경·인문계 졸업생의 전유물이었던 경영·영업지원 직무에서조차 기술이해도가 높은 이공계 출신을 선호한다.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8월 대학정보사이트 '대학알리미'에 공개한 전국 174개 대학정보공시에 따르면 2014년 공학계열과 자연계열의 취업률은 각각 66.9%, 55.6%로 사회(56.6%), 인문(45.9%), 예체능(44.4%)
계열을 크게 웃돌았다. 공대의 경우 의약계열(72.8%) 다음으로 가장 높은 취업률을 기록했다. 일명 '전화기'라고 부르는 전자공학·화학공학·기계공학과는 취업이 잘 돼 대학생 사이에서 '취업의 끝판왕(종결자)'이라고 불리는 상황이다.
지난 2월25일 고려대 졸업식장에서 만난 신세현 고려대 기계공학부 교수는 "제자 중에 이번에 취업 못한 학생은 없고, 다들 잘 골라서 갔다"며 "문과 쪽과는 졸업식 분위기도 사뭇 다르다"고 소개했다.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일자리일수록 이공계 선호 현상이 뚜렷하다. 삼성그룹의 경우 지난해 전체 신입사원 선발 인원의 80%를 이공계 인력으로 채웠으며, 삼성전자는 이공계 출신 사원을 85% 이상 뽑았다. 게다가 지난해 하반기 신입사원 공채에서는 6개 삼성 계열사가 이공계 출신만 선발한 데 이어 올해도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 일부 계열사가 이 기조를 유지할 계획이다. LG디스플레이와 LG화학, 포스코ICT 등도 지난해부터 이공계 출신만 채용하기 시작했고, 현대차그룹도 지난해 초부터 인문계열 전공자 채용을 상시채용으로 돌려 그룹 공채에서는 배제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에 따르면 국내 300대 기업의 56.8%가 '이공계를 더 많이 뽑는다'고 답했고, '문과 출신을 많이 뽑겠다'고 답한 기업은 고작 14.6%에 그쳤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말 전체 인력 가운데 연구개발 인력이 절반을 넘어섰다"며 "올해도 지난해처럼 신입사원의 80% 가량을 이공계에서 뽑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어린이·청소년들이 일찌감치 이공학, 즉 수학·과학 등에 재미를 느끼도록 유도하는 게 유리하다고 조언한다. 김훈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한국과학영재학교 수리정보과학부장은 "초·중·고등학교에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은데 입시 위주 교육에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한다"며 "재미를 길러주는 교육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홍성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공계 교육이나 정부 지원의 궁극적인 목적은 기술개발이나 기업의 기술혁신활동에 '활용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며 "다양하게 분화되는 과학기술인력 수요에 맞춰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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