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시부야구에 있는 명품 쇼핑몰 ‘오모테산도 힐즈’. 지난 3월 문을 연 이곳에는 평일에도 매장에 들어가려는 쇼핑족들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일본 경제가 90년대 초부터 10년 넘게 이어졌던 ‘초장기 불황의 늪’에서 확실하게 벗어났음을 상징하는 모습이다. 14일에는 2001년 3월 이후 5년4개월 동안 ‘제로금리’ 정책을 고수하던 일본은행이 초장기 동면에서 깨어나 단기금리를 인상했다. 이번 금리인상은 “일본 경제가 회복됐다”고 국제사회에 통보하는 일종의 선언. 일본에서는 벌써부터 ‘이번 경제회복이 과거 경제강국의 신화를 만들었던 ‘이자나기 호황’(65년 11월~70년 7월)’을 뛰어넘을 힘이 있다’고 기대할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 있다. 일본 경제 부활의 서곡을 울린 주인공은 ‘히노마루 전자’.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기업간 연대는 끝없는 나락으로 빠져들던 일본 경제회생의 발판이 됐다. 가전의 대명사 소니의 부활은 이 같은 자신감의 또 다른 징표. 불과 2년 전 최악의 경영실적으로 일본 닛케이지수 폭락사태를 야기했던 이 회사는 최근 LCD TV 브라비아를 통해 LCD 세계 최강인 샤프를 제치고 1위로 뛰어올랐으며 핸디캠과 디지털카메라 역시 세계시장 점유율 40%를 회복했다. 소니의 부활은 생살을 찢어내는 아픔을 동반한 구조조정과 자존심을 버린 선택과 집중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3월 사령탑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 물러나고 소니 최초의 외국인 CEO 하워드 스트링거가 구원투수로 긴급 수혈된 후 소니는 대대적인 수술을 단행했다. 1,200억엔 규모의 자산매각을 결정했고 15개 사업을 9개 부문으로 줄였다. 또 올해 4,500명의 직원을 정리하기로 계획한 가운데 2,400명은 이미 소니를 떠났다. 평생직장이란 소니의 창업정신보다 경쟁력 회복이 우선된 것이다. 2001년부터 진행된 마쓰시타ㆍ후지쓰ㆍ히타치 등 일본 전자업체의 경쟁력 강화 전략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마쓰시타는 중복사업을 정리하고 통합하며 88개 전략상품을 선정하는 동시에 브랜드를 내셔널과 파나소닉으로 이원화했다. 후지쓰는 PDP는 히타치에, LCD는 샤프에 매각하며 컴퓨터 제조에 집중했다. 히타치는 가전ㆍ디스플레이ㆍ프린터 등을 분사하는 동시에 IBM HDD(하드디스크)를 인수, 소형 HDD 시장 1위 기업으로 거듭났다. 일본 전자업체가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었던 또 다른 기반은 기업간 연대와 전략적 결정에 의한 산업클러스터. LCDㆍPDP 등 글로벌 경쟁이 강화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는 ‘강자들만의 연합’을 구성, 대형화를 추진했다. 히타치ㆍ도시바ㆍ샤프 등 4개 업체가 각축을 벌이던 LCD패널은 샤프와 IPS알파테크놀로지로 통합됐고 PDP는 5강 체제에서 3강체제로 압축됐다. 반도체는 D램에서는 5개 업체가 엘피다반도체로 통합됐고 비메모리도 르네사스로 모였다. 연공서열과 합의를 중시하던 일본식 경영이 새로운 시각으로 무장한 CEO를 중심으로 과감한 개혁을 펼치면서 무서운 속도로 활력을 되찾는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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