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게 떨어진 집값 후폭풍 막으려고…
[파이낸셜 포커스] 신청자 '0'… 메아리 없는 하우스푸어 대책●우리은행 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시행 일주일주택 소유권 이전에 부담 대출자 제도 이용 시큰둥다중채무자는 감안 안해 지원대상 산정도 엉터리
이유미기자yium@sed.co.kr
부동산 경기 침체와 주택가격 하락은 57만 가구의 하우스푸어를 양산했다. 이들이 보유 중인 대출 규모만 150조원. 하우스푸어 문제가 1,0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부실의 도화선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금융계 전체가 구제책 마련에 머리를 싸맸다.
이때 총대를 메고 등장한 것이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시중은행 처음으로 ‘트러스트앤 드리스백’제도를 지난달 3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분할상환대출 원리금을 연체해 15~17%의 고금리 연체이자를 부담해야 하는 하우스푸어들에게 대출 이자 대신 연간 4.15%의 임대료만을 받는 방식이다. 대신 집주인은 신탁등기로 소유권을 은행에 넘기고 3~5년 동안 주택의 관리나 처분권이 제한된다.
우리은행의 트러스트앤드리스백 제도는 하우스푸어의 돌파구가 될 수도 있다는 기대감 속에 출범했다. 하지만 시장의 뜨거운 관심과 상반되게 지난 일주일간 제도를 신청한 하우스푸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우리은행의 하우스푸어 대책이 처음부터 구조조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출범 일주일…신청자 ‘0명’=우리은행은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우리은행 본점의 주택금융부는 트러스트앤드리스백 제도 시행 이후부터 전국의 영업점에서 매일 수백통의 문의 전화가 걸려오고 있다. 전화 응대로 정상적인 업무가 불가능할 정도다. 그만큼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는 반증이겠지만 정작 지난 일주일 동안 제도 신청자는 단 한 명도 없어 실무자들이 고민에 빠졌다. 은행의 한 관계자는 “소유권을 이전하는 부분이 있어 결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며 “최소 2~3주 뒤부터는 대상자들이 제도를 신청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주택을 최후의 보루로 여기는 하우스푸어들이 선뜻 소유권 이전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은 트러스트앤드리스백 출범부터 심심찮게 제기돼왔다.
실제 신한은행이 지난달 19일부터 실시하고 있는 하우스푸어 구제책인 ‘주택힐링프로그램’은 제도 시행 보름만에 55명(대출규모 74억5,000만원)이 신청해 대조를 이루고 있다. 주택힐링프로그램은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연체 중인 고객들에게 일정기간 동안 원금이나 이자 상환을 유예해주는 제도이다. 트러스트앤드리스백과 달리 소유권 변경에 대한 부담이 없어 하우스푸어들이 상대적으로 주택힐링프로그램에 몰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원 가능 대상 1,288명의 함정=우리은행이 설정한 트러스트앤드리스백 지원 가능 대상의 자격 요건에도 모순이 존재한다는 지적이다.
우리은행은 제도를 시행하는 시점에 트러스트앤드리스백 제도의 대상이 되는 고객 숫자를 1,288명으로 분류했다. 이는 9억원 이하 1주택 보유자 중 우리은행에 주택담보대출 분할상환 원리금을 연체 중인 고객들이다. 그런데 이중 실제 제도 이용이 가능한 고객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라는 게 금융계의 분석이다.
신탁 등기 방식으로 소유권을 변경하는 제도의 특성상 우리은행 외에 후순위채 담보대출을 보유 중인 고객은 대상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1,288명이 지원 대상 고객을 분류하는 과정에서 2금융권에서 후순위채 담보대출을 보유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우리은행 측은 “대상 고객의 등기부등본을 일일이 떼봐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후순위채 보유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시인했다.
이는 하우스푸어들 중 상당수가 생활비나 금융비용을 융통하기 위해 2금융권에서 후순위 담보대출을 추가로 이용하고 있는 다중채무자라는 현실을 감안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금융계의 한 전문가는 “시중은행에서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을 연체하고 있는 하우스푸어라면 이미 여러 곳의 금융기관에 다중채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며 “제도시행 초기라 제도의 성공여부를 논할 수는 없지만 하우스푸어와 다중채무자 문제를 함께 아우르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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