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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착의 사회병리

서로 붙어 있어서는 안될 장기나 조직이 병적으로 서로 붙어 있을 때 의료에서는 유착이라는 말을 쓴다. 미국의 돌란드 의학사전에서는 유착을 「두 개 이상의 부위가 서로 붙어 있는 것. 병적으로 일어 나는 현상으로서 붙어 있는 부위는 섬유질의 구조물이나 띠를 형성한다」고 되어 있다.외과의사들이 수술후에 제일 귀찮아하는 부작용의 하나가 이 유착이다. 위궤양이나 위암 치료를 위하여 위의 일부를 절제해 내고 공장과 연결해서 음식이 잘 내려가도록 수술하였는데 그 수술부위와 그 근처의 다른 장기와 유착이 일어나면 통로가 막혀서 음식이 내려가지 않게 된다. 암환자 관리에서 가장 골치아픈 문제 또한 이 유착이다. 암이란 놈은 성질이 고약해서 자기 주위에 있는 장기나 조직에 닿기만 하면 그것이 건강한 장기건, 병적인 장기건 아랑곳하지 않고 유착을 일으켜서 말썽을 피운다. 이런 유착이 일어 나는 데에는 몇 가지 원리가 있다. 첫째는 유착되는 것들 중 어느 하나는 병들어 있기 마련이다. 멀쩡한 장기나 조직끼리는 유착이 일어나지 않는다. 개복수술을 하면 복막은 바깥바람을 한번 쏘였다는 사실만으로 약간의 손상을 받아 가볍게 유착을 일으킨다. 둘째로는 유착을 일으키는 둘 이상의 부위가 서로 닿아 있어야 한다. 아무리 고약한 병변이라도 멀리 떨어져 있는 장기나 조직과는 유착을 일으킬 수 없다. 암조직이 멀리 있는 장기로 전이되는 것은 유착과는 다른 현상이다. 세째는 유착을 일으키더라도 병적인 부위보다 건강한 쪽의 힘이 세면 큰 문제를 안 일으킨다. 유착을 일으키면서도 병적인 부위를 건강한 부위가 감싸서 나쁜 힘을 빼기 때문이다. 네째로 병적인 부위끼리의 유착이 가장 빈번하고 악성이다. 유유상종이다. 다섯째로 한번 유착이 일어나면 이웃장기나 조직과 계속 새로운 유착을 시도한다. 여섯째는 그 예후다. 유착이 저절로 해소되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서 문제가 될 정도로 유착이 일어나면 수술로 과감하게 잘라 내야 한다. 99년에 우리나라는 참 말썽도 많았다. 그 가운데서도 유착이라는 말이 꽤나 회자됐다. 권언유착, 정경유착, 업관유착등 붙지 않아야 할 사이에 수많은 유착이 일어났고, 그 결과 우리 사회는 극심한 아노미에 빠져들었다. 사회병리에서의 유착은 어떤가? 인체에서의 유착과 마찬가지다. 첫째로 깨끗한 집단끼리는 유착할 필요도 없고 유착되지도 않는다. 다만 협조가 있을 뿐이다. 지저분하고 뒤가 구린 집단이 깨끗한 집단을 더럽혀 가면서 유착되거나, 더러운 집단끼리 더 더러워지려고 유착한다. 둘째로 업무의 성격상 서로 자주 만나게 되는 집단끼리 유착이 생긴다. 부정한 유흥업소는 위생관계 공무원과 유착하고, 뒷돈을 챙기려는 악덕 건설업자는 건축 인허가 기관과 유착한다. 악덕 기업인과 부패 정치인이 유착한다. 셋째로 사회에서는 항상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 유착이 생겼다 하면 그 피해는 항상 국민이 보게 마련이다. IMF환란을 일으킨 부패집단끼리의 유착의 결과로 온 국민이 지금 피나는 고통을 겪고 있다. 아직도 건강한 세력이 힘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부패세력이 힘을 쓰고 있다. 넷째로 지금 우리 사회의 유착은 더러운 집단끼리의 유착이기 때문에 그 피해가 더욱 막심하다. 모두가 더럽기 때문에 유착 이외의 협조라는 개념은 들어 설 자리가 없다. 외국 사람들이 지적하는 대로 우리 경제는 지금 낙관할 수 있는 근거가 하나도 없는 데도 온 나라가 흥청망청인 이유도 우리 사회의 전체에 만연된 유착현상 때문이다. 다섯째로 우리 사회의 병적 유착현상은 제대로 치료하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팽창일로를 걷고 있다. 여섯째로 말로만의 미지근한 개혁 구호만으로는 사회병리적인 유착은 해결되지 않는다. 외과 수술후의 유착부위는 수술로 싹둑 도려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사회의 병적인 유착도 과감하게 도려내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다. 병적 유착의 해 99년이 간다. 깨끗한 채로 다가오는 2000년과 제발 유착을 일으키지 말것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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