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주주가치 증대도 살펴야"… 제로베이스서 검토할 듯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국민연금 주내 찬반 결정
의결위는 합병비율만 따져 사실상 반대 결론 가능성 커
법적 위상 등 논란 의결위 대신 투자위 전문가들에 결정 맡겨
국민연금, 제일모직도 대주주 양측 가치 종합적 판단 고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성사 여부의 키를 쥔 국민연금이 이르면 이번주 의결권 행사를 결정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가 최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에 대해 반대 입장을 내놓으면서 국민연금의 스탠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있고 시간을 끌수록 관련 논란이 커질 수 있어 조속한 입장정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6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삼성과 엘리엇매니지먼트가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 합병을 둘러싸고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국민연금이 이번주에 열릴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합병에 대한 찬반 의결권 행사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의결권전문위원회에 안건을 부의할 경우 지난 6월 SK와 SK C&C의 합병 때처럼 위원들 간에 소모적인 논란만 일으킬 수 있어서다. 앞서 국민연금은 지난달 삼성물산 경영진을 만나 합병 시너지 효과와 합병 후 주주가치 제고 방안 등을 검토해 찬반 의사를 결정하겠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문제에 정통한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의결권전문위가 지난 SK와 SK C&C의 합병안에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기로 할 때 주된 근거가 합병비율 문제였다"면서 "하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합병비율 외에 중장기적 관점에서 주주가치 증대도 살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결권전문위에서 논의할 경우 사실상 반대 쪽으로 결론이 날 확률이 높은 만큼 투자위 내에서 모든 요인을 제로베이스에 놓고 따져 결정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의결권전문위는 6월 회의에서 SK와 SK C&C의 합병비율 등이 최태원 회장 등 오너 일가에 유리하게 결정되면서 SK 주주가치를 훼손했다는 이유로 SK 합병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합병비율이 관련법에 근거해 산정됐음에도 오히려 이를 부정하는 모순된 행동을 한 것이다.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르면 상장법인 간의 합병일 경우 시가(거래되고 있는 주식 가격)를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결정하도록 돼 있다.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이 합병할 경우 자산가치를 반영할 수 있지만 순자산가치가 주가보다 높은 경우에만 반영할 수 있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기금운용본부 내에 전문가들로 구성된 투자위원회가 있는데도 학계에서 법적 위상과 역할에 대해 논란이 있는 의결권전문위에 결정을 떠넘기는 것은 민감한 사안은 피하고 보는 보신주의"라면서 "지난 SK 합병안 반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현행법에 따라 진행한 기업의 합병에도 문제 삼는 것은 월권"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이 삼성물산뿐 아니라 제일모직 지분도 대량 보유한 것도 고민을 깊게 하는 대목이다.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 외에 제일모직 지분을 5% 안팎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기금의 한 고위관계자는 "아직 공시가 안 돼 알려지지 않은 상태지만 국민연금은 제일모직 지분도 5% 가까이 보유한 대주주"라며 "2·4분기 보유지분 규모는 5%를 넘어섰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제일모직 시가총액은 24조원, 삼성물산 시총은 16조원이다. 두 회사의 국민연금 지분율을 적용하면 지분가치는 제일모직이 1조2,000억원, 삼성물산이 1조1,600억원으로 사실상 비슷하다. 삼성물산 지분을 7.12% 보유한 엘리엇과 달리 국민연금은 두 회사의 주주가치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최대주주(11.12%)라는 지위만 공개돼 합병안에 대한 입장이 왜곡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들어 엘리엇과 헤르메스 등 외국계 헤지펀드들이 국내 기업 지배구조의 취약성을 약점으로 삼아 파고드는 것도 고민거리다. 엘리엇은 최근 삼성물산 외에 삼성SDI와 삼성화재 지분 각 1%를 사들였다. 3일 종가 기준으로 삼성SDI는 773억원, 삼성화재는 1,380억원어치다. 지난해 말 이들 회사의 주주명부에는 없었다. 삼성SDI와 삼성화재는 각각 삼성물산 지분 7.18%와 4.65%를 보유한 대주주라는 점 때문에 목적 있는 지분투자라는 분석이다. 헤르메스 역시 3일 단순투자 목적이라고 밝혔지만 삼성정밀종합화학 지분을 5% 이상 보유했다고 공시했다. 신장섭 싱가포르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달 말 국회에서 열린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 간담회'에서 "'국민'이라는 이름이 붙는 국민연금은 국익에 의거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면서 "삼성은 여러 가지 우리 사회에 대한 '공과'가 있지만 엘리엇(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반대하고 나선 미국 헤지펀드)는 '공'도 없고 다른 나라에서는 '과'의 결과만 내놓고 있다"며 "아프리카 기아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단체의 원조금 지급을 중단시키고 채무부터 갚으라고 독촉해 고수익을 챙기는 곳이 엘리엇"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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