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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순례/김창실 선화랑 대표(로터리)

아직 미술관이란 개념이 일반화되지도 않았던 지난 80년 5월께다. 기왕에 미술계에 몸담은바에는 세계미술의 흐름과 미술문화의 변천을 보고 배워야한다는 어느 미술평론가의 권유에 따라 어렵게 구미 각국의 미술관을 들러본 적이 있었다.처음 시카고의 아트 인스티튜트 미술관에 안내를 받았을때는 무려 6시간을 돌면서 그 광범위한 미술문화의 발전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뉴욕 현대미술관·피트니 미술관 등에서 마주친 미술문화의 존엄성 앞에서는 이야말로 하나님을 닮은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품들이란 생각에 가슴 뿌듯한 자긍심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나 더욱 필자를 감동시켰던 것은 뉴욕의 센트럴 파크 옆 맨해튼 5번가에 자리한 후리크 컬렉션이란 아담한 사설미술관이었다. 이 곳은 아직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는데 헨리 그레이 후리크(1849∼1919)라는 사람이 세운 미술관이다. 그는 피츠버그에서 석탄과 강철로 많은 돈을 벌었는데 젊어서부터 40여년간 인상파 그림 등 많은 미술품을 수집했다고 한다. 후리크는 당초 이 곳을 주거용으로 만들었으나 자신이 죽은 뒤에는 미술관으로 바꿀 것을 고려해 미술관용 채광장치를 하는 등 일찍부터 세심한 배려를 했다는 것이다. 후리크가 사망한 뒤에 르네상스 미술에서 인상파 로코코가구에 이르기까지 그가 소장했던 막대한 개인 소장품들을 사회에 기증, 오늘의 후리크 컬렉션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땐 가슴 뜨겁게 느껴지는 감동으로 떨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만해도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은 미술품에 큰 관심을 가질 만큼 넉넉하지가 않았던 시절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당시의 감동도 따지고 보면 별것 아니었다. 유럽으로 건너가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르네상스 미술품과 퐁피두센터의 현대미술앞에서의 체험은 경이 그 자체였고 로마의 시스틴 뮤지엄에서 마주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앞에서는 아예 움직일 수가 없었다. 또 피렌체의 우프치 미술관안에서는 발디딜틈 없는 관광객들의 인파를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하루빨리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미술관들이 생겨 외국 관광객들을 유치하는 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우프치 미술관은 부호 메디치가의 여인들이 미켈란젤로·다빈치·라파엘로 등의 미술품을 수집하여 르네상스 미술을 꽃피우게한 미술관으로 유명하다. 이밖에 베니스의 패기 구겐하임 미술관·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샌프란시스코의 폴게티 미술관·로스앤젤레스의 모카 미술관 등을 비롯해 우리나라의 호암미술관·경주 선재미술관 등을 건립한 사람들은 모두 인류문화발전의 역군으로서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선량한 분들이다. 이들의 공로가 없었던들 인간의 문화발전은 살아남지못했을 것이며 인간의 행복을 예술 속에서 찾기 힘들었을 것이 아닌가. 우리나라에서도 정부의 각별한 배려속에 미술관을 짓는 이들이 이 나라의 문화발전을 위해 더욱 많이 생겨나주기 바라는 마음 또한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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