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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이 높은 사람이 자신보다 신용도가 낮은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면 어떨까. 대한민국이 이런 '굴욕'을 당하고 있다. 국제금융가의 '큰손'들이 우리나라의 부도위험을 남미나 동남아 국가 수준으로 평가하는 이상한 현상이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다.
이런 모순이 벌어지는 곳은 신용부도스와프(CDS)시장. CDS란 투자자가 자신이 보유한 채권이 부도가 나면 원금을 보장 받기 위해 가입하는 일종의 보험상품인데 CDS 프리미엄이 상승하면 자칫 부도위험국이라는 착각을 조장해 우리 정부와 기업들의 외화 자금조달을 어렵게 하고 최악의 경우 해외투자가들의 이탈을 부를 수 있다.
그런데 CDS를 거래하는 국제금융회사 등이 우리나라 국채에 대해 중남미나 동남아 주요국 국채보다 높거나 비슷한 보험료(CDS 프리미엄)를 매기고 있는 것이다.
26일 기획재정부와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국제금융시장에서 우리나라 국채에 대한 CDS 프리미엄은 5년 만기물 기준으로 지난 24일 현재 141bp(1bp=0.01%)로 마감됐다. 이는 우리나라보다 신용등급이 낮은 멕시코(133bp), 브라질(136bp), 콜롬비아(126bp), 말레이시아(116pb)보다 높은 수준. 심지어 투기등급인 인도네시아 국채의 CDS 프리미엄(160bp)도 우리나라에 근접한 상황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부여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은 투자적격인 'A' 등급인데 비해 말레이시아는 'A-', 멕시코ㆍ브라질은 'BBB', 콜롬비아는 'BBB-', 인도네시아는 'BB+' 등급을 부여 받고 있다.
이들 국가의 CDS 프리미엄은 2009년 말까지만 해도 우리나라(86bp)보다 4~102pb 높았는데 지난해 들어 역전됐거나 근접한 수준에 이르렀다.
우리나라가 우량한 신용등급에도 불구하고 중남미ㆍ동남아 국가 수준의 부도위험국으로 치부되는 것은 무엇보다 나라 전체의 빚 규모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의 대외채무 규모는 3,984억달러(잔액 기준)에 달해 전년 말보다 무려 10.9%(390억달러)나 증가했다.
물론 우리나라의 외채 규모가 이처럼 급증하는 데는 경제 및 무역 규모가 커지면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국제금융센터의 김윤경 박사는 중요한 포인트를 얘기했다.
그는 "국내 금융기관들이 과도하게 외화표시채권을 발행해 국제금융시장에서의 수급균형을 깨뜨린 것도 CDS 프리미엄을 상승시킨 원인"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특히 외화표시채권 발행물량의 70%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은행들이 불필요한 발행을 자중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 시중은행의 자금 담당자도 "유럽 재정위기와 같은 대외불안요인이 크다 보니 은행들이 외화자금 조달물량을 평상시보다 조기에 더 많이 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우리나라의 외화표시채권 발행이 급증하면 해당 채권의 투자위험을 낮추기 위한 투자자들의 CDS 상품 수요가 크게 늘어 상대적으로 보험료 가격(CDS 프리미엄)이 과도하게 올라가게 만든다. 투자자의 보험료 가격이 올라갈 경우 기채를 하는 우리 정부나 기업들에 빌려주는 돈의 이자를 올리게 되고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나라의 국부 유출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CDS 프리미엄이 남미ㆍ동남아 주요국에 역전된 지난해 우리나라의 외화채권 발행물량은 297억달러에 달해 경제 규모가 훨씬 큰 중국(250억달러)을 능가했다는 게 국제금융센터 측의 설명이다. 같은 시기 인도네시아의 발행물량은 65억달러, 멕시코는 200억달러였다. 브라질은 우리보다 많은 338억달러어치를 발행했지만 민간은행 등이 주를 이루는 우리나라와 달리 정부 주도 채권 발행이 주를 이뤄 상대적으로 CDS 수요를 상쇄시켰다.
한국금융연구원의 서병호 박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외국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외화표시 국내채권 규모는 2008년 말 920억달러에 달해 여타 신흥국의 네 배 이상을 기록했다. 이 같은 시장구조는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같은 대외불안요인이 발생할 경우 우리나라의 CDS 프리미엄 상승폭을 한층 가중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금융전문가들은 외환 당국이 은행 등의 외화표시채권 발행물량을 적정 수준으로 유도하고 발행 시기도 최대한 분산하도록 조율해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채권 발행물량이 일시에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화표시 국내채권시장의 높은 변동성에 노출된 CDS 프리미엄의 리스크를 상쇄하기 위해 원화표시 국내채권 CDS시장을 육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이를 위해서는 현행 도산법 개정이 필수로 꼽힌다.
외환보유액의 지속적인 확충도 필요하다. 조슈아 아이젠먼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외환보유액 증가가 CDS 프리미엄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30%선에 그쳐 50%대에 달하는 콜롬비아에 못 미친다고 얘기했다.
신용부도스와프. 신용파생상품의 가장 기본적인형태다. 채권이나 대출금등기초자산의 신용위험(creditrisk)을 전가하고자 하는 보장매입자(protectionbuyer)가 일정한 수수료(premium)를 지급하는 대가로 기초자산의 채무불이행등신용사건(credit event) 발생시 신용위험을 떠안은 보장매도자(protectionseller)로부터 손실액 또는 일정금액을 보전 받기로약정하는 거래를 말한다. CDS 약정시 보장매입자가 신용위험을 이전한 대가로 지급하는 수수료를 CDS 프리미엄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CDS 프리미엄은 기초자산의 신용위험이 커질수록 상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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