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퓨즈업체인 D전자의 Y대표는 요즘 일본에서 오는 전화를 받기가 두렵다. 일본 발주처에서 엔저를 이유로 가격을 깎아달라고 계속 요구하고 있어서다. Y대표는 "매출의 90%가 수출인데 이중 일본 수출이 70%에 달한다"며 "엔저로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하락하고 있어 가격 재협상이 매우 어렵다"고 울상을 지었다.
#LED모듈을 만들어 수출물량 대부분을 일본 제조업체에 납품하고 있는 P사 역시 엔저로 매달 20% 이상씩 수익성이 뚝뚝 떨어지고 있다. 이 회사 J대표는 과거에는 미국 달러 거래조건이었으나 번거로움을 이유로 일본 엔으로 거래통화를 바꾼 것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그는 "최근 엔저 사태는 중소기업 스스로 극복하기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환헤지 보험 등 간접적인 지원보다 피해기업에 대한 직접지원(운전자금)이 보다 바람직하다"고 호소했다.
미국 테이퍼링으로 심화된 '엔저 사태'가 국내 수출 중소기업에 직격탄을 날리고 있다. 일본 수출은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제품과 경쟁하는 품목을 중심으로 수출단가 인하 압력이 더욱 거세지고 있는 실정이다. 아울러 엔저에 따른 수출 대기업의 고전으로 1·2·3차 협력업체들 역시 연쇄적으로 물량감소와 납품단가 인하 압력에 직면하고 있다.
5일 중소업계에 따르면 일본 수출 중소기업들이 엔저로 수익성 악화는 물론 일본 기업 등 납품처로부터 가격 인하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디지털영상장치업체인 P사 C대표는 "엔저로 이익률이 5% 이상 감소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환율 문제로 매출채권 입금시 상당한 환차손이 발생하고 있어 투자축소, 개발비 축소, 출장 경비 축소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J사의 L대표도 "일본 수출 비중이 높은데 엔저에 대비해 달러로 거래를 하고 있지만 최근 마진이 줄어든 일본 딜러들이 계속 단가를 낮춰달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답답해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일본업체들과 경쟁하는 국내 업체들의 가격경쟁력이 낮아지면서 수출시장을 빼앗길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수출을 해도 남는 것이 거의 없거나 출혈수출을 면치 못해 경영타격이 예상되고 있는 것. 이원해 대모엔지니어링 대표는 "일본업체와 경쟁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이 제시하는 가격에 맞춰 우리도 조정해달라는 해외 딜러들의 요구에 머리가 아프다"고 걱정했다.
이와 관련,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엔저로 국내외 시장에서 일본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면서 이전 대비 7~10%가량 매출 하락 요인이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며 "수익성 하락 역시 심화되면서 경영 부담을 느끼는 업체가 많아졌다"고 진단했다. 무역협회가 수출업체를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최근 엔화약세와 우리 수출에의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엔저로 인해 수출상담·계약 차질을 경험한 업체가 4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채산성 악화로 수출 포기를 경험한 업체도 20%나 됐다.
중소업체 상당수는 엔화 약세가 지속될 가능성에 대비해 자구책 마련에 나선 상태다. 의약품 원료 생산업체인 에스텍파마 관계자는 "지난해도 영향이 있었는데 어디까지 지속될지 지켜봐야 한다"며 "일본 시장이 급격이 악화되는 것은 아니지만 매출이 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올해 사업계획을 보수적으로 잡았다"고 대응 방안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다른 시장을 개척하는 동시에 다른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자동차·TV·반도체 등 일본과 경합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수출에 타격을 받으면서 고스란히 협력업체의 물량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점도 심각한 부분이다. 협력업체의 한 대표는 "대기업 점유율이 하락하면 오더가 줄어드는 것은 물론 납품가에도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제한돼 있어 전전긍긍할 뿐"이라고 토로했다.
문제는 올해 원·엔 환율이 연평균 100엔당 900∼920원까지 떨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지만 제대로 대비하지 못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허다하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실시한 '최근 환율변동에 따른 중소기업 영향조사'에 따르면 68.4%가 "환율 하락에도 불구하고 여건상 환리스크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중소기업들은 100엔당 1,199원62전을 적정 원·엔 환율로 보고 있다.
양갑수 중기중앙회 통상정책실장은 "환율 하락 요인이 향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환변동보험, 선물환 활용 등 적극적인 환관리를 통해 글로벌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을 제거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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