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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직에 박봉… 야근 밥먹듯… 회계사마저 등돌린 회계법인

[기업 망치는 부실 감사] <상>추락하는 자본시장의 파수꾼

저가 수수료 경쟁 심화로 빅4 영업익 20% 곤두박질

제대로 된 감사 힘들어 회계부정 악순환 되풀이



#1. A회계법인에서 근무하는 30대 회계사가 최근 출장차 들른 제주도의 모 호텔에서 사망했다.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가족은 과로사라고 주장한다. 비슷한 시기에 이 회계법인의 사내 게시판에는 감사 업무량에 비해 인원이 적어 업무부담이 과도하고 부실감사 우려가 높다는 비판의 글이 올라왔다.

#2. 지난해 말 B회계법인은 신입 회계사 30여명을 계약직으로 선발했다. 회계법인의 사정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바쁜 감사 시즌을 맞아 적은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회계사들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이다. 회계사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것은 회계업계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3. 비슷한 시기 C회계법인은 내부 갈등에 휩싸였다. 대표와 부대표급 회계사들 간에 충돌이 있었고, 결국 부대표급 임원을 강제 제명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수익악화로 회계법인이 구조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밀려난 인사들의 불만이 폭발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4 D회계법인은 지난해 11월 코스닥 상장기업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감사하지 못해 투자자에게 140억원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네 가지 사례는 삼일PwC·딜로이트안진·삼정KPMG·EY한영 등 국내 4대 회계법인에서 지난해부터 올 초까지 벌어진 일이다. 이 사례들은 최근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하고 있는 회계법인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공교롭게도 4대 회계법인이 번갈아가면서 문제를 일으켰지만 이는 각 회계법인만의 특수한 개별 문제가 아니라 공통의 문제이자 구조적인 문제"라고 지적했다. 각각의 사례를 살펴보면 최근 불거지고 있는 △회계법인들의 수익악화 △부실감사 △과도한 업무량 △시니어 회계사들의 제 밥그릇 챙기기 △청년 회계사들의 좌절 등과 같은 문제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배경에는 갈수록 나빠지는 수익성이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012회계연도 4대 회계법인의 총 매출액은 1조1,176억원으로 전년의 1조187억원에 비해 9.7% 소폭 늘었으나 영업이익은 162억원으로 전년의 195억원에 비해 20.4%나 감소했다.

수익성이 악화한 가장 큰 이유는 국내 기업들이 감사 보수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데 있다. 금감원에 따르면 4대 회계법인의 외감대상 법인에 대한 총 감사금액은 2008회계연도 2,893억원에서 2012회계연도에는 3,549억원으로 22.7%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 상위 100대 기업의 시가총액은 483조원에서 993조원으로 105.6% 증가했다. 국내 기업들이 규모에 걸맞게 감사 보수를 현실화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회계법인의 구조적인 문제가 심화되면서 회계사들이 회계법인을 떠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금감원과 한국공인회계사회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체 공인회계사회 회원 중 휴업 중인 회계사는 5,439명으로 전체 1만6,605명의 32.8%로 나타났다. 휴업으로 분류되는 회계사는 회계법인 소속이거나 개업한 회계사를 제외한 일반 기업체나 금융회사·금감원 등에 소속돼 회계감사 업무를 하지 않는 회계사를 말한다.

휴업 중인 회계사는 2010년 말 4,312명에서 2011년 말 4,821명, 2012년 말에는 5,086명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늘고 있다.

특히 젊은 회계사들의 이탈이 심각하다. 4대 회계법인에 소속된 한 5년차 회계사는 "입사 후 3년이 지났을 때 동기의 절반이 회사를 나갔고 2년 후에는 또 남은 절반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며 "다른 대기업에 비해 처우가 좋은 편도 아니고 한창 바쁜 감사 시즌에는 새벽2~3시까지 야근이 계속되는 등 격무에 시달리다 보니 회계법인에 있을 이유가 없다"고 설명했다.

황 교수는 "회계사 수가 늘어나면서 회계법인 간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각 회계법인들의 파트너급들이 저가 수수료 경쟁에 열을 올리면서 실제로 일을 하는 일선 회계사들은 과도한 업무량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계속돼 젊은 회계사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회계법인의 문제는 사회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강기정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상장폐지 심사대상 전체 223건 중 최대사유는 횡령·배임(46건, 21%)이었으며 그 규모는 2조2,087억원에 달했다.

특히 횡령·배임 금액은 2009년 2,835억원이었으나 2010년 4,570억원, 2012년 6,176억원으로 가파르게 늘어났다. 부실한 회계감사가 기업의 회계부정으로 이어져 사회에 큰 손실을 끼치는 것이다.

강성원 한국공인회계사회 회장은 "회계 감사는 공공재이기 때문에 회계가 부실하면 결국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피해처럼 사회 전체가 큰 대가를 치러야 한다"며 "최근 벌어지고 있는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의 문제를 이들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적인 구조의 문제로 인식하고 제대로 된 회계 감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사회 구성원들이 공감대를 형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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