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1년 '삼포세대'라는 말이 처음 등장했다. 높은 등록금과 생활비, 취업난, 주택 문제 탓에 청년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다는 뜻의 신조어다. 그로부터 4년이 흐른 현재. 상황은 더 나빠졌다. '오포세대'를 넘어 '칠포세대'가 됐다. 이 땅에서 살려면 연애·결혼·출산에 인간관계·집 그리고 꿈·희망마저 포기해야 한단다. 심지어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 취업에 성공한 '운 좋은' 젊은이들조차 이민을 꿈꾸기 시작했다. 북유럽 등지로 이민 가기 위해 스터디 모임을 결성하고 적금까지 넣는다고 한다. 한 리서치 전문 업체가 올 초 전국의 19~59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76.4%가 이민을 꿈꾼 적이 있다고 답했을 정도다.
쉬운 일이 아닌 줄 알면서도 이국행을 꿈꾸는 이유는 뭘까.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 대한 허희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에서 답을 찾아본다. '가까이에서 보면 정글이고 멀리서 보면 축사인 장소가 한국'이다. 한국은 '담장 안쪽의 모든 이를 통제하고 순종시키는' 나라란다. 이 말에 고개를 갸우뚱할 사람도 있겠지만 신작 소설이 출간 3개월 만에 4쇄를 찍었다는 점을 보면 공감한 사람이 꽤 많다고 생각해도 될 법하다.
이번에는 한국 탈출을 꿈꾸는 주체의 범주를 개인에서 기업으로 넓혀본다. 특히 이민을 떠나는 소설의 주인공 계나처럼 그간 살아온 땅을 떠나는 것이 모험에 가까운 내수 기반 기업들의 해외행과 연결지어 생각해본다. 같은 프레임에 넣어봐도 그다지 어색하지 않다. 꽤 잘 맞아 떨어진다. 유통이나 식품·외식 등 많은 내수 기업들이 불확실성에도 해외 진출을 감행한다. '판로 확대'나 '신시장 개척'이라는 말로 해외행의 목적을 포장하지만 포장지를 벗기면 계나의 이유와 비슷하다.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일본식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면서 더 이상 활기 도는 소비 시장을 꿈꾸기 힘들어진 마당에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간섭은 점점 늘어날 뿐이다. 물건이 안 팔려도 가격을 내려야 하고 잘 팔려도 가격을 내려야 하는 '요상한' 때도 있다. 정부가 새로운 내수 활성화 대책이나 지역 발전 계획을 내놓으면 사업성과 상관없이 일단 참여해야 한다.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반 토막 나거나 심지어 적자가 나도 사회공헌활동은 늘려야 한다. 신규 점포를 내려면 기업 능력 밖의 청사진까지 내놓아야 한다. 지난 면세점 특허 경쟁 당시 참여 기업들이 국가 차원의 관광 활성화 대책까지 마련해야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수출 기업에 비해 홀대받는다는 볼멘소리를 하면서도 지난 광복절에도 정부보다 더 요란하게 광복절을 축하했는데 자발적이었는지 비자발적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개인의 이민이 쉬운 일이 아닌 것처럼 기업의 해외 진출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민 실패 후 돌아오는 사람이 많은 것처럼 기업들 역시 참패하고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그래도 또 다른 사람들이, 또 다른 기업이 외국으로 눈을 돌린다. 해외에 진출해 몇 년째 적자를 내고 있는 한 유통업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솔직히 여기는 너무 힘들어요."
/정영현 생활산업부 차장 yhch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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