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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경쟁/선후발업체 「초가격파괴」 끝이없다/정유특집
입력1997-08-14 00:00:00
수정
1997.08.14 00:00:00
민병호 기자
◎후발“시장재편 기회”/선발“선두지위 수성”/올 가격자유화조치로 불붙어/「1원내리면 하루 3,000만원 손실」감수/ 휘발유 적정가 829원인데도 803원까지/‘품질·서비스로 승부’ 자성 움직임도「업계에겐 경쟁을 통한 구조재편을, 소비자에겐 이익을.」
올들어 국내 휘발유시장의 가격경쟁은 말그대로 「파격적인」이다. 지난 1월 후발사인 쌍룡정유가 ℓ당 9원씩을 내려 가격경쟁의 포문을 연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점유율 1, 2위 업체인 유공과 LG칼텍스정유가 본격 가세함으로써 정유시장은 본격적인 경쟁체제로 접어들었다.
이어 지난달에는 유공이 종전의 ℓ당 8백15원에서 6원 내린 8백9원으로 내리며 선제공격을 하자 뒤이은 현대정유와 쌍용은 이보다 6∼7원이 더 싼 8백2∼8백3원으로 내리면서 업계의 가격경쟁은 혼전의 양상으로 변했다.
이를 계기로 정유5사의 휘발유값은 ℓ당 8백2∼8백3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석유가격 연동제 공식에 의한 이달 휘발유 적정가격이 8백29원인 점을 감안하면 가격이 얼마나 떨어지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업계의 가격경쟁을 부추긴 것은 올해부터 시작된 가격자유화 조치다. 지난해까지 휘발유가격은 국제 원유가격에 연동해 정부가 통제를 해 왔으나 올해부터는 이를 자유화했다. 정부는 그러나 자유화의 잠정조치로 지난 6월까지 가격을 3일전에 신고토록하는 사전신고제를 도입, 실시해왔으며 7월부터는 하루전에 가격을 신고토록 바꾸어 가격의 완전자유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처럼 시장환경이 크게 달라지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쌍용과 한화, 현대 등 후발업체들은 이번 자유화조치를 시장구조를 재편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로 인식하고 있다. 반면 유공과 LG칼텍스정유 등 선발업체들은 시장지위를 더욱 확실히 굳히겠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지난 5월까지만 해도 어느정도 자제분위기를 보였던 업계의 가격경쟁이 6월들어 본격화되고 있는 것은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휘발유의 소비자가격이 ℓ당 8백원대에 이르는데 비해 3% 남짓한 26∼27원이 어떻게 「파격적」일 수 있느냐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휘발유값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27원의 크기를 실감할 수 있다.
휘발유값 1원은 휴대폰이나 가전제품의 1만원짜리 한 장 이상의 위력을 갖는다. 이유는 휘발유제품은 다른 제품과 달리 제품원가에 대한 기업의 통제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이는 휘발유의 가격구조를 보면 분명해진다.
현재 ℓ당 8백3원을 기준으로 할 때 세금이 전체의 69.3%인 5백56.4원이나 된다. 구체적으로는 교통세가 4백14원, 교육세 62.1원, 부가세 80.3원이다. 대리점이나 주유소가 챙기는 유통마진은 75원에 불과하다.
이들 금액은 정유사 입장에서는 통제할 수 없는 금액이다. 세금과 유통마진을 제외한 공장도 가격은 1백78원. 그러나 여기에도 통제불능 원가가 있다.
전체의 10% 가까이를 차지하는 원유도입비와 운임, 보험료, 관세 등도 비산유국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통제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들 비용을 제외하면 정유업체들이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원가는 휘발유 가격의 15%를 차지하는 정제비와 약간의 일반관리비와 판매비 정도에 불과하다.
따라서 정유업계의 입장에서 볼 때 ℓ당 27원의 금액은 정제비와 일반관리비 등 통제가능한 원가(약 1백20원)의 20%가 훨씬 넘는, 그야말로 「필사적인」 가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휘발유값 1원을 낮추게 되면 업계가 입게되는 수익감소액은 하루 약 3천만원, 1년이면 1백10억원의 손실을 입게된다. 이런 계산은 국내 휘발유 소비량이 하루 3천만ℓ(19만2천배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내 정유사들이 지금과 같은 가격경쟁을 1년간 계속할 경우 연간 입계되는 수익감소액은 약 3천억원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정유업계는 입으로는 「초가격 파괴」를 외치고 있지만 속은 몹시 쓰리다. 한 업체가 가격경쟁을 시작하면 따라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일일이 대응하자니 이처럼 경영수지 악화라는 상처를 입게된다.
특히 전체시장의 67%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유공과 LG정유 등 상위업체들의 상처는 더욱 심하다. 같은 1원을 내려도 쌍용이나 한화, 현대정유가 입는 손실은 유공과 LG정유가 입는 손실의 절반에 불과하다.
지난달까지 리터당 30원 가까이 값을 내리면서 치열한 혼전의 양상을 보이던 가격경쟁이 이달 들어서는 현대정유(8백원)를 제외한 모든 업체들이 일제히 리터당 8백3원의 값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업계는 출혈 가격경쟁이 계속될 경우 결국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판단아래 이달부터는 가격경쟁 대신 품질과 서비스를 중심으로한 비가격경쟁에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8월들어 여름철 휴가고객을 대상으로한 다양한 서비스를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으며 카드제를 통해 단골손님 만들기에 본격 나서고 있다. 그러나 가격경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이번 가격자유화 조치를 시장구조 재편의 호기로 인식하고 있는 쌍용, 한화, 현대정유 등 후발업체들은 언제든지 가격경쟁을 재차 시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휘발유 시장을 둘러싼 정유업계의 경쟁은 국지적인 가격경쟁이 펼쳐지는 가운데 품질과 서비스차별화를 중심으로한 비가격 경쟁이 펼쳐지게 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지적이다.<민병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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