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5년 2개월 만에 1,200원대에 진입하며 고환율 시대를 예고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앞두고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고조된 상태에서 테스코의 홈플러스 매각에 따른 일시적 달러 매수세가 유입돼 환율을 밀어 올렸다. 시장이 흔들리자 외환당국은 속도 조절에 나섰지만 그렇다고 환율을 1,100원대로 꿇어앉힐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덕분에 수출에는 힘이 보태졌다. 다만 전 세계적 수요부진에 따라 효과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7일 서울 외환시장은 8원60전 오른 1,202원으로 출발해 일찌감치 1,200원대에서 거래를 시작했다. 지난주 말 미국 고용지표가 헷갈린 방향을 제시하면서 금리인상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이대호 현대선물 연구원은 "미국 고용지표가 금리인상을 예상할 수 있는 확실한 신호가 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미궁에 빠지면서 위험자산 회피심리가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테스코의 홈플러스 관련 달러매수였다. 딜러들은 이날 하루에만 10억달러 이상의 달러매수가 몰린 것으로 추정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번 매각으로 총 40달러 이상의 달러수요가 순차적으로 풀릴 것으로 보고 있다. 시장 관계자는 "일시적인 수급요인에 따라 단기 고점을 확인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은 수출 기업들에 반가운 소식이다. 수출은 지난 8월 14.7% 감소하는 등 최악의 위기를 맞고 있다. 3% 성장에 목마른 정부 입장에서도 환율상승은 유리한 방향이다. 외환당국이 물줄기를 바꾸기보다 속도를 늦추는 스무딩에 그칠 것으로 예상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1,200원 돌파가 본격적인 고환율 시대를 예고한 것으로 봤다. 이대호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1,200~1,250원 사이에는 강한 저지선이 없었다"며 "환율이 빠르게 상승해 연말에는 1,230원까지 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문일 유진투자선물 연구원은 "이번 달에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원·달러 환율도 추가로 상승할 것"이라며 "연말 환율을 1,270~1,280원, 4·4분기 평균으로는 1,230~1,240원을 예상한다"고 말했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국이 다음주 금리를 인상하면 환율이 크게 오를 것"이라며 "하지만 연내 추가 인상이 없다는 신호가 나올 경우 환율 상승세가 진정되고 우리나라의 경상흑자가 부각되면서 연말 환율이 1,200원선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상승에 따라 수출기업에 돌아갈 수혜가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전 세계 수요부진이 그만큼 심각하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환율이 오르는 것은 그야말로 우리 수출에 '다행' 정도일 뿐"이라며 "우리를 비롯해 신흥국 환율이 오르는 것 자체가 전 세계 경제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환율효과가 수출에 이르기까지 시차도 무시할 수 없다. 이른바 'J커브'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환율이 수출 및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데는 2년 정도 걸린다"며 "우리도 지금 환율상승이 추세로 간다면 2017년 경제성장률에 반영될 것이지 당장 수출이 좋아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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