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창업정신'이 다시금 조명을 받고 있다. 고 박 회장이 '제철보국(製鐵報國)'과 '우향우 정신(실패할 경우 오른쪽 영일만에 몸을 던질 각오)'으로 사업을 시작해 글로벌 포스코의 기반을 만든 것처럼 재계 각 그룹의 성장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저마다의 창업정신이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창업정신은 현재도 각 그룹 경영이념의 근간을 이룰 뿐 아니라 경영의 가이드라인, 구성원 결속을 위한 슬로건 등으로 계승되고 있다. ◇나라에 빚을 갚자=삼성그룹에는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 '사업보국(事業報國)' 등 고 이병철 창업주가 주창한 3대 가치가 그룹 전체에 면면히 내려오고 있다. 이 중 사업보국은 고 박 회장의 '제철보국'과 유사하다. '갚을 보(報)' 자를 써서 '나라에 빚을 갚는다'는 개념은 당시 경제인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고 있던 개념이다. 사업을 통해 나라에 빚을 갚는다는 이 창업주의 기업이념은 현재도 삼성그룹 사회공헌의 정신적인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삼성이 지난 1995년부터 자원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삼성자원봉사 대축제'를 이어오는 것도 이 같은 이념을 구현하기 위해서다. 한진그룹은 조중훈 선대 회장이 주창한 '수송보국(輸送報國)'이라는 창업이념을 바탕으로 택배에서 항공에 이르는 운송ㆍ물류 부문 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조 회장은 1945년 광복 직후 이 정신을 바탕으로 한진그룹의 모태인 한진상사를 창립했다. 한진(韓進)이라는 이름 역시 '한국의 전진'을 뜻한다. 한화그룹 창업주인 고 현암 김종희 회장은 '국가와 사회에 이바지하고 봉사하는 외길'을 위해 걷자는 마음으로 화약생산 자립화에 매진했다. 한국전쟁에서 화약 국산화의 필요성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현대중공업의 경우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의 '해봤어' 정신이 기업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해보지도 않고 안 된다고 하지 말라'는 뜻으로 '불가능을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정 회장이 몸소 실천한 '근면ㆍ검소ㆍ친애'는 범현대가의 정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LG그룹은 고 연암 구인회 회장이 남긴 '연구개발ㆍ개척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연구개발을 통해 도전해보지 않았던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자는 것이다. 구본무 회장도 이를 이어받아 1995년 취임 이후 그룹의 '연구개발성과보고회'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SK그룹의 창업정신은 창업주인 고 최종건 회장 의'패기'와 함께 갑작스럽게 경영권을 물려받은 최종현 회장의 '지성'이 근간을 이룬다. 이후 패기는 SK그룹 구성원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덕목이 됐고 지성은 경영 시스템인 'SKMS'로 정립됐다. ◇인화·소박·성실 =롯데그룹은 신격호 총괄회장의 좌우명인 '거화취실(去華就實)'의 정신을 기업문화로 확산시키고 있다. 화려함을 멀리하고 실속을 취한다는 뜻이다. GS그룹은 '인화'를 중시한다. 인화경영은 LG와의 공동경영 시절부터 시작된 것으로 GS그룹 출범 후에도 그룹의 단결과 발전을 위해 꾸준히 이어왔다. 허씨(GS)와 구씨(LG) 두 가문이 1947년 창업 이래 57년 동안 성공적으로 동업해온 것은 바로 이 인화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농심은 신춘호 회장의 '이농심행 무불성사(以農心行 無不成事)'가 기업이념이다. 농부의 마음, 즉 성실과 정직으로 행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올해로 창립 65주년을 맞은 샘표는 고 박규회 회장이 설파한 '내 가족이 먹지 못하는 것은 만들지도 팔지도 않는다'는 문구를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이밖에 대림산업은 인간존중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계승하고 있으며 현대산업개발은 고 정세영 명예회장이 주창한 '정도경영ㆍ도전중시ㆍ인재중시'의 3대 경영철학을 바탕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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