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대규모 등급 조정을 실시하며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동양 사태 이후에도 신용등급 강등에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시장과 소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태도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바람직한 변화로 평가하고 있다.
17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한국신용평가와 나이스신용평가는 KT ENS가 모기업(KT)의 지원거부로 기업회생 절차를 실시하면서 최근 KT그룹 주요 계열사의 신용등급을 하향검토 대상에 올려놓았다. 주목할 만한 점은 KT렌탈(AA-), KT캐피탈(AA-) 등 KT계열사 뿐 아니라 AAA등급의 KT마저 신용등급 하향검토 대상에 올린 것.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사건으로 평가하고 있다.
'침묵의 카르텔'과 다름없었던 신용등급 평가에도 균열이 가고 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4일 현대상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최근 'BBB+'에서 'BBB0'로 한 단계 낮췄다. 같은 날 한국기업평가는 현대상선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두 단계 떨어뜨렸다. 그러자 한국신용평가는 현대상선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로 3단계나 낮춰버렸다. 기존에는 한 신용평가사에서 특정 기업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낮추면 다른 회사들도 동일한 수준으로 떨어뜨렸지만 이번에는 신용등급 강등의 카르텔이 무너져버렸다.
신용평가사들이 변화된 모습을 보인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 신용등급에 대한 비판이 커지면서 위기의식이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그동안 '뒷북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기업과 시장이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신속한 등급 조정이 우선돼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기관의 움직임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동양 사태 이후 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평가방식이 적절했는지 결과를 조사했다. 금감원은 일부 신평사의 문제점을 적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신평사들은 정기평가를 5월부터 실시하는데 지난주 대규모 신용등급 조정을 실시한 점은 특이한 현상"이라며 "금감원의 조사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근 움직임을 보면 신평사들의 평가 스탠스가 변화하고 있는데 바람직한 모습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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