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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색 맞추기"관행…고질병 키웠다

[벼랑끝 내몰린 회계감사] <상> 불신당하는 자본시장 파수꾼<br>회계사등 상대 소송 2001년 3건서 작년 10건으로<br>과당경쟁으로 덤핑수주ㆍ인력부족등 부실감사 원인<br>재계약위해 '기업 눈치보기'도… 독립성 확보 시급

“분식회계는 일회적인 것이 아니다. 회계감사에 대한 낮은 보수, 회계사를 속이려는 기업의 태도, 상시적인 감시체제의 부재 등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서 발생하는 한국적 고질이다.” (대형 회계법인의 한 중견 회계사 K씨) K씨는 “지금처럼 회계감사를 ‘귀찮은 간섭자’ 또는 ‘구색 갖추기에 필요한 장식’쯤으로 치부하는 현실 속에서는 감사를 할 때마다 패가망신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고 실토했다. 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살핀다 해도 경영파트너로 인정하지 않는 기업들이 존재하고 회계감사가 고작 생색 내기식으로 치부되는 상황에서는 분식회계와 같은 사고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는 말이기도 하다. 문제는 내년부터 집단소송제가 도입되면 더 많은 부실 및 분식회계 사례가 쏟아질 수 있다는 점. 문택곤 한국공인회계사회 상근부회장은 “분식회계를 포함한 회계부정 사고는 회계법인과 기업ㆍ감독당국 등이 모두 합심해서 풀어야 할 범사회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불신받는 ‘자본시장의 경찰’= 회계사는 자본시장의 경찰로 기업과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심판관의 역할을 기대받고 있다. 그러나 잇따라 터지는 분식회계 사건으로 투자자들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회계법인과 회계사를 상대로 한 소송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2001년 3건이던 소송 건수가 2002년에는 7건, 2003년에는 10건으로 급증했다. 집단소송제 도입 후에는 소송이 봇물을 이룰 듯한 분위기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매니저 회계사는 “회계사에게 자본시장의 경찰이나 파수꾼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며 “덤핑수주로 수수료가 깎이면서 감사에 투입되는 인력과 시간이 절대적으로 줄었고 기업과 재계약을 하기 위해서는 봐줄 것은 봐주고 넘어가는 줄타기를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회계법인과 기업, 공생이냐 공멸이냐= 지난해 금융감독원은 SK글로벌의 부실감사 책임을 물어 영화회계법인에 대해 사상 처음 과징금을 부과했다. 담당 회계사는 대우사태 이후 처음으로 등록이 취소됐다. 이에 대해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회계법인이 분식회계에 공모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없었지만 회계사가 최소한의 확인절차를 무시하는 명백한 과실을 했다”며 “회계사가 은행에 예금이나 대출을 확인하는 것은 기본인데 회사가 주는 자료를 그대로 받기만 했다”고 지적했다. 한 대형 회계법인의 파트너는 “직접 실무를 뛰는 스태프나 중간 관리자인 매니저와 달리 파트너는 고객인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다”며 “과거와 달리 최근에는 실무자나 심의실의 강화된 견제 때문에 알면서도 봐주는 일은 절대 없다”고 말했다. 최근 회계법인에서 소형 증권사로 자리를 옮긴 한 회계사는 “대우사태 이후 감사를 할 때마다 살얼음판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며 “분식회계 사건 이후 사경을 헤매거나 암에 걸린 파트너 등을 보면서 기업감사에 대한 부담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덤핑수주 막아야 성실감사 가능하다= 회계사들은 과당경쟁으로 인한 덤핑수주가 부실감사의 가장 큰 이유라고 말한다. 한 기업 회계 담당자는 “외국계 회계법인은 받은 만큼만 일한다”며 “회계법인도 회사인데 손해를 봐가면서까지 무리해서 일하는 것을 요구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한 회계사는 “기업감사는 리스크가 커 꺼리는 탓에 요즘은 회계사들이 컨설팅 쪽으로 주력한다. 영화회계법인도 10억원을 받고 150억원을 손해배상했다. M&A나 부실채권 매각작업 등에 대한 컨설팅이 감사보다 훨씬 안전성과 수익성이 있고 시장도 커질 것으로 보여 주력하는 분위기”라며 “시장원리와 회계법인의 공공성을 감안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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