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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원을 다시보자
입력1998-11-13 00:00:00
수정
1998.11.13 00:00:00
요즘은 멀리 떠나 있는 친구들이 자꾸만 보고 싶은 계절이다. 나의 친구 중 학생 때부터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던 이가 있다. 그는 유능하고 사려깊은 선장이었는데 지금 미국 시애틀에서 일하고 있다.그는 가끔 독백을 하듯 선원생활의 고달픔을 털어놓곤 했다. 『선원들은 그들의 역할에 상응하는 사회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어.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의 무역대국이 된 데는 선원들의 기여가 적지 않음에도 이를 제대로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니잖아. 남북으로 분단되어 섬나라가 된 한국이 무역량의 99.7%를 선박으로 수송할 수밖에 없다면 선원들은 당당한 무역의 역군이지 않는가. 경제개발 초기에는 노후선박으로 화물을 수송했고 수많은 선원들이 바다에서 불귀의 객이 되었는데도 무역의 날에 선원들은 그 자리에 끼지도 못하니 참담하지. 오랜 항해 끝에 그리던 내 나라 항구에 입항하여 땅냄새를 맡으려고 상륙하면 밀수꾼 취급을 받고. 이러한 결과는 조선조 500년간 유교적 양반문화에 젖어 뱃사람을 천대했기 때문이야. 어(漁)는 사농공상에도 끼지 못했잖아. 양반은 물에 빠져도 헤엄치지 않는다고 하는데 하기야 상투에 망건 두르고 갓 쓴데다 축 늘어진 도포 입은 양반이 헤엄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꼴불견이지. 남의 나라 선장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고, 세계를 일주하고, 남극을 탐험하던 시절에 그 잘난 양반들은 공자 맹자에 빠져 상투잡고 싸움박질 했으니 나라꼴이 그 모양이 되었지.』
그의 부인은 나에게 『우리 훈이 버지 선장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했다. 이유를 물으니 『창피하니까요』라는 대답에 마음이 아렸다. 선진국 해운회사에도 근무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은 뛰어난 선장임에도 자기 남편이 창피하다니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우리 사회의 인식이다.
천주교 부산교구청 주최로 선원의 날을 정해서 기념식을 했다. 선원행정당국에서도 하지 못하는 행사가 주교님의 집전으로 장엄하게 진행되었다.
우리나라 선원인구의 대략 80%가 부산에 거주하고 있어 부산지역 모든 성당에는 거의 선원가족 신자들이 있음에도 노출을 꺼렸다. 그 이유는 친구 부인의 생각처럼 「창피해서」였다.
그때 나는 선원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부산해운항만청장으로서 선원가족들에게 이렇게 격려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으로 첫 전교를 나가셨을 때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그물을 꿰매고 있는 요한과 야고보를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그들은 선원이었고 예수의 수제자들이 되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초대교황이 되셨습니다. 이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스스로가 선원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만 잘못된 사회적 인식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라는 나의 절규가 그들에게는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로 해운이 꼭 필요한 산업이다. 해운의 3대 요소를 선원·선박·화물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수한 조선소들을 가지고 있고 자원빈국이라 외국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야 하고 국내시장이 협소하여 제품을 수출 할 수밖에 없다. 인적 자원이 풍부하므로 선원확보도 쉬워 해운입국의 필요충분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서야 할 일은 선원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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