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발생한 금융위기가 실물경기에 퍼지면서 현재는 석유제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크게 줄어든 상태지만 이럴 때야말로 투자의 적기라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다수의 각국 정유사들이 투자에 주춤한 모습을 보이는 지금이야말로 더 싸게, 더 빨리 시설을 지을 수 있는 호기라는 주장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여름에만 해도 각국 정유사들이 고도화설비 증설에 앞다퉈 열을 올려 설비를 짓는 비용이 천정부지로 올라갔다”면서 “그러나 현재 시설투자 계획을 취소하거나 연기한 곳이 많아 비용이 크게 낮아진 상태”라고 전했다. 특히 고도화설비의 경우 일부 핵심 장치는 일본의 몇몇 회사만이 제작할 수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각국 정유사의 주문이 밀려 발주 후 2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핵심 장치뿐만 아니라 각종 부품의 조달이 모두 용이해져 빠른 시공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하는 정유 및 화학 업종에서 설비의 용량과 효율성은 곧 경쟁력이다. 기술 발전 속도도 빨라 같은 용량을 지닌 설비라도 새로 지은 것이 옛 설비에 비해 훨씬 효율적이기도 하다. GS칼텍스의 한 고위관계자는 “투자 없이는 경쟁력도 없다”면서 “특히 장치산업인 정유업종에서는 더 크고 더 좋은 시설을 확충하는 것만이 미래 경쟁력을 담보하는 방안”이라고 역설했다. 때문에 GS칼텍스는 지난해 창사 이래 처음 적자를 기록하고도 고도화설비 증설에 대한 투자는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있다. 석유사업은 대표적인 시황 사업이기도 하다. 좋은 시절이 있으면 반드시 나쁜 시절이 오고 이 과정이 반복된다. 그러나 시황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설비투자를 감행한 회사만이 살아 남는다. 구자영 SK에너지 사장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석유사업은 경제성장률ㆍ유가 등에 따라 배드사이클(bad cycle)이 주기적으로 오는 산업이며 배드사이클에서도 지속적으로 투자해야만 하는 숙명을 지니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의 석유제품 수요 급감과 가격 하락 국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큰 언급이다. S-OIL의 한 관계자는 “지난 1991년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고도화설비 건설을 결정하고 IMF 외환위기 직전 공사를 끝냈기 때문에 현재와 같은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것”이라면서 “국제 시장이 변하는 패턴은 분명하기 때문에 투자는 미래지향형으로 뚝심 있게 진행해야 하며 경기 하강국면이 오히려 투자의 적기로 작용한 것은 세계 업계의 역사가 증언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