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초 국내 e스포츠시장에 안타까운 소식이 하나 날아들었다. 지난 2001년 우리나라에서 출범해 세계 최대 e스포츠 행사로 자리잡은 '월드사이버게임스(WCG)'가 전격 폐지를 선언한 것이다. 삼성전자라는 든든한 후원사를 뒀음에도 글로벌 게임시장 지형이 급변하자 WCG는 더는 대회를 꾸리기 어렵다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에는 프로게임단 'STX 소울'과 '웅진 스타즈'가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모기업의 경영 악화에 따른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소속 선수들은 하루 아침에 새 일터를 찾아야 하는 신세가 됐다. 이들은 바로 전까지만 해도 인기 온라인 게임 '스타크래프트2' 프로리그에서 나란히 우승과 준우승을 거머쥐었던 터라 게임 마니아들의 실망은 더욱 컸다.
정부의 게임산업 규제와 외산 게임의 공습으로 국내 게임시장이 된서리를 맞으면서 'e스포츠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뒤늦게나마 국내 게임업계가 e스포츠 활성화에 뛰어들었지만 이대로라면 차세대 콘텐츠산업의 첨병으로 부상한 e스포츠의 주도권을 고스란히 외국에 내주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9일 업계에 따르면 CJ E&M 넷마블은 상반기 중 온라인 게임 '파이러츠'를 국내에 출시하고 연내에 프로게이머가 참여하는 프로리그도 개최할 예정이다. 파이러츠는 스페인 게임업체 버추얼토이스가 개발한 게임으로 정식 서비스는 우리나라가 처음이다. 앞서 넷마블은 버추얼토이스로부터 파이러츠의 글로벌 판권을 독점으로 획득했다. 게임업체가 출시 전인 게임의 프로리그 운영 계획까지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기존 국산 게임에서는 볼 수 없었던 차별화된 콘텐츠와 경쟁력이 돋보였다는 설명이다. 넷마블은 프로리그 운영과 별개로 아마추어리그와 PC방 대항전도 잇따라 열고 글로벌 e스포츠시장을 두드린다는 방침이다.
넥슨은 지난해 12월 국내 게임업체 최초로 e스포츠 전용 경기장인 '넥슨 아레나'를 개관했다. 국내 e스포츠시장의 저변을 넓히고 게임 마니아들의 접근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업계의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넥슨 아레나에서 개최되는 경기 대부분이 넥슨이 유통하는 '도타2'와 '피파온라인3' 등 외산 게임이어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인기 게임을 중심으로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것 못지않게 경쟁력 있는 국산 게임을 발굴하는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전용준 e스포츠 캐스터는 "외산 게임이 e스포츠 경기의 주류로 자리잡은 것은 그만큼 이들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가 많다는 의미"라며 "국내 프로게이머의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정작 실질적인 이득은 외국 게임사가 가져가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e스포츠시장에서 외산 게임의 독주는 최근 들어 더욱 가파르다. 점유율 40%를 넘나들며 국내 온라인 게임시장 1위를 달리는 '리그오브레전드'를 비롯해 '스타크래프트2', '월드오브탱크', '월드오브워크래프트' 등은 매번 프로리그 경기가 열릴 때마다 게임 마니아들의 열렬한 응원이 이어진다.
반면 국산 게임은 갈수록 자취를 감추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카트라이더', '서든어택', '테일즈런너' 등이 외산 게임에 버금가는 인기를 구가했지만 최근 들어 모두 프로리그가 폐지되거나 사실상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12년에는 '대통령배 전국 아마추어 e스포츠 대회'에서도 외산 게임이 정식 종목에 편입되면서 국산 게임은 점유율뿐만 아니라 프로리그에서도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과거 현대자동차, 신한은행, 필라 등의 대기업들이 앞다퉈 억대의 기금을 조성하며 e스포츠 공식 후원사로 나섰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다.
e스포츠는 그 자체로 하나의 콘텐츠산업으로 차세대 한류 콘텐츠로 급부상하고 있다. 작년 10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리그오브레전드 월드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에서 'SK텔레콤 T1'은 중국 '로열클럽 황주'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리그오브레전드의 최강자를 뽑는 이 경기를 보려고 1만2,000명이 직접 입장권을 구입해 경기장을 찾았고 전 세계적 3,200만명이 실시간으로 경기를 지켜봤다. 이를 계기로 e스포츠를 정식 스포츠 종목으로 채택하기 위한 국제e스포츠연맹의 발걸음은 한층 속도가 붙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가 e스포츠 시대의 주도권을 선점하려면 e스포츠 시장을 겨냥해 전략적으로 게임을 개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간 국내 게임업체가 두각을 나타낸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일변도에서 벗어나 e스포츠의 특성을 고려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영화관에서 한국영화를 의무적으로 상영하도록 한 스크린쿼터제처럼 e스포츠에도 '국산 게임 쿼터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민규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e스포츠에서 흥행하는 게임은 비교적 짧은 시간에 대전이 이루어지지만 개인의 능력과 팀 전략이 게임의 승패를 좌우한다는 특징이 있다"며 "국산 게임이 글로벌 e스포츠 시장에서 주요 종목으로 채택되면 또 다른 한류 열풍을 불러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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