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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 Watch] 서민 먹거리… 프리미엄 얻고 추억 잃다

떡볶이·호떡 사라진 노점상… 낭만도 함께 가져가다

어묵·떡볶이 등 분식점 프랜차이즈화… 씨앗호떡·군고구마 등은 백화점으로

붕어빵은 홈메이드 가전에 수요 뺏겨 1만개 넘던 서울 노점 8,000여개로 ↓

고달픈 서민경제 민낯 그대로 보여줘



서울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1번 출구 인근에서 10여년째 노점상을 하는 박시웅(58)씨. 살을 에는 추위에 두 귓불과 양쪽 뺨이 붉게 물들었지만 어묵을 집어들며 몸을 녹이러 하나둘 모여드는 손님이 있으면 추위쯤은 견딜 만하다고 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길거리 장사를 하는 동지(?)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박 씨처럼 한 곳에서 오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밀가루 등 식재료 값은 해가 갈수록 상승하고 있지만 떡볶이·어묵 등 길거리 장사 메뉴 가격은 몇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저렴한 가격에 많은 이들이 길거리 먹거리를 찾을 것 같지만, 상황은 외려 반대다.

박 씨는 "노점해서 돈 벌어 자녀 공부 다 시켰다는 말은 옛말"이라며 "재료 값은 재료 값대로 오르는데 파는 가격은 몇 년째 똑같고 백화점 먹거리며 프랜차이즈 분식집들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으니 마진이 계속해서 줄고 있다"고 토로했다.

겨울철 즐겨 찾는 대표적 간식으로 손꼽히는 고구마·붕어빵·호떡·어묵 등을 파는 길거리 상점들이 하나둘 사라지고 있다. 달력 등 이면지로 봉투를 만들어 1,000원에 서너마리씩 담아주던 붕어빵·군고구마 등 정겨운 옛 추억이 담긴 길거리 음식들은 이제 꼼꼼히 찾아야만 사서 먹을 수 있는 별미가 됐다.

서울시의 거리가게 실태조사에 따르면 2009년 1만345개에 달하던 길거리 상점은 2013년 8,826개로 줄었다. 자영업의 마지막 보루라고도 일컫는 길거리 상점이 급속도로 자취를 감추는 데는 소비자의 식습관 변화와 유통 트렌드 변화도 한몫했다.

식품업계는 위생을 따져 건강한 먹거리는 내 손으로 만들어 먹겠다는 DIY(Do It Yourself)족을 겨냥, 각종 프리미엄화를 내세우며 손쉽게 조리해 먹을 수 있는 겨울 간식 아이템을 앞다퉈 내놓았다.

와플 플레이트나 붕어빵 플레이트 등 집에서 쉽게 모양을 만들어 즐길 수 있는 홈메이드 가전제품 출시도 많아지면서 예전만큼 겨울 먹거리에 대한 수요가 덜하다. 떡볶이나 어묵의 경우 최근 대형화·프랜차이즈화라는 시대 흐름 속에 길거리를 떠나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면서 소비자의 구미를 당기고 있다. 아딸·국대떡볶이·죠스떡볶이 등 길거리 분식 메뉴를 매장 안으로 들여와 간판 메뉴로 만든 프랜차이즈 매장을 동네에서 찾기가 더 쉬워졌다.

붕어빵도 팥 대신 슈크림 등 다양한 속 재료를 채워 사계절 내내 팔고 있어 겨울에만 맛보는 따끈한 간식이라는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 지난 2009년 프리미엄 꼬리표를 단 붕어빵 '아자부'가 백화점 식품관에 출현했다. 붕어빵을 카페에서 먹는다는 참신한 콘셉트로 빠르게 소비자 관심을 끌어냈다. 한 마리당 2,500∼3,500원에 달하는 가격이지만 인기몰이를 이어가며 가맹사업을 펼치고 있다.



호떡과 군고구마 역시 일찍이 백화점 지하 푸드코트로 들어가 고급 겨울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군고구마 값은 껑충 뛰어올라 '금 고구마'가 돼 백화점과 카페 등에 들어갔지만 소비자에게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거리 상점에서 1개 1,000원이면 집어들 수 있는 고구마가 백화점 식품관에서는 1,500∼3,000원대 가격에 이르지만 맥반석 구이 등 프리미엄을 입은 군고구마는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프리미엄을 앞세운 다채로운 먹거리 앞에 길거리 상점들은 경쟁력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지만 이마저도 식자재값 상승 등으로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버겁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에 따르면 이달 6일부터 12일까지 1주일간 가락시장에서 고구마 10㎏ 한 상자는 상품(上品)으로 평균 2만2,668원에 거래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9.1% 급등한 가격이다. 하루 15시간 이상 길바닥에서 장사해도 갈수록 떨어지는 매출에 더 이상 노점을 이어갈 수 없는 이들은 장사를 접고 식당일이나 일일 공사장 근로를 택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저렴한 가격으로 서민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던 추억의 겨울 음식들이 고급화 바람과 노점 단속 등과 맞물려 사라지는 것이다. 급속도로 사라지는 노점상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고달픈 서민 경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셈이다.

최오수 민주노점상전국연합 대외협력국장은 "알다시피 고구마·붕어빵·호떡·어묵 등은 사계절 장사가 아니다"라며 "예전만 해도 길거리 상점들이 호황기에 바짝 벌고 비수기에 간간이 버티며 생활했지만 지금은 호황기라 일컫는 겨울조차도 겨우 연명하며 장사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이어 "기업형 노점 얘기가 많지만 이는 소수에 불과하고 실제로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이들 80%가 차상위계층"이라며 "진입 장벽이 낮고 고생한 만큼 벌 수 있는 게 노점이었는데 지금은 그마저도 쉽게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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