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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1등 자신감… 추격에서 수성으로

■ 삼성 신경영 아이콘 '비교전시회' 개편<br>소니 등 경쟁제품으로 절하하고<br>따라오는 중국엔 위기의식 강조<br>신경영 20년 역사 성과 알리기도


#1993년 2월18일. 이건희 삼성 회장은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사장단 회의에 앞서 사장들에게 예고 없이 현지 유통매장을 돌아보게 했다. 이 회장은 이어 먼지만 뒤집어쓴 채 외면 받고 있는 삼성전자 제품을 확인한 사장단을 대상으로 즉석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VTR와 냉장고ㆍ세탁기ㆍ에어컨 등 삼성전자 제품과 선진 제품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전자부품 수출상품 현지 비교 평가회의'라는 이름의 이 전시회는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 이후 정례화되면서 삼성 신경영 추진의 아이콘처럼 자리를 잡았다.

삼성이 20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온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의 이름부터 내용까지 모두를 바꾸는 것은 신경영 선언 이후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삼성전자의 1등 제품이 11개에 이를 정도로 회사의 기술력과 세계시장 점유율이 큰 폭으로 늘어나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또 소니 등 일본 제품을 선진제품으로 포장하기보다는 경쟁제품으로 평가 절하하고 중국 등의 제품을 보면서 위기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차원으로 분석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과거 20년 동안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를 통해 앞선 기술과 제품을 배우고 따라갔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뒤에서 추격하는 경쟁자들의 제품과 비교해 위기의식을 갖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결국 1등 탈취를 위한 전시회가 이제는 1등 수성을 위한 전시회로 변경되는 셈이다.

◇1등 탈환을 위한 혹독한 평가의 장=이 회장은 선진제품 비교 전시회의 효시라 할 만한 '전자부품 수출상품 현지 비교 평가회의'에서 혹독한 평가로 사장단들을 질책해 더 좋은 품질의 제품 생산을 주문하기로 유명하다.

이 회장은 당시 일본산과 삼성 제품을 분해한 뒤 "삼성이 생산하는 VTR의 부품(원가)이 도시바보다 30%나 많으면서 가격은 오히려 30%나 싼 데 어떻게 경쟁이 되겠느냐"고 다그쳤다. 또 "TV의 가로세로가 4대3이나 16대9가 아닌 독창적인 와이드 제품을 만들어라" "TV 브라운관이 볼록한데 평면으로 만드는 방법을 찾아라" "손에 잡기 쉽고 간단히 온ㆍ오프 기능만 할 수 있는 리모컨을 만들어라" 등 다양한 질책과 대안 마련을 요구했다.

아울러 이 회장은 과거 전시회에서 임직원들에 대한 강한 메시지와 사장들에 대한 노골적인 질책을 내놓으면서 삼성그룹 전체를 긴장에 몰아넣는 무대로도 활용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처음 열린 행사에서 "2등 정신을 버려라. 세계 제일이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주문을 시작으로 1998년 행사에서는 "세계시장 점유율 1위 월드 베스트 품목을 사업부당 하나씩 발굴하라"는 특명도 내렸다.

2007년에는 황창규 당시 반도체 담당 사장에게 "반도체 수율이 왜 하이닉스에 뒤처졌느냐"고 현장에서 질책하는 일도 벌어졌다. 4년 만에 참석한 2011년 행사에서 이 회장은 "소프트 기술, 인재, 특허" 등을 3대 핵심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1등에 대한 자신감과 추격을 보고 배우는 위기의식=일본 소니와 샤프 등의 기술을 좇은 삼성전자는 신경영 20년 만에 11개 제품을 세계 1위에 올려놓는 등 품질과 디자인 등에서 괄목할 만한 혁신을 이뤄냈다. 결국 전시회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는 이유도 세계 1등 전자기업에 대한 자신감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D램과 낸드플래시, 모바일 AP 등 부품에서부터 TV와 모니터ㆍ휴대폰ㆍ냉장고ㆍ정보표시대형모니터(LFD)에 이르기까지 사실상 거의 모든 분야에서 세계 1등"이라며 "소니와 샤프 등 적자에 허덕이는 일본 기업이나 더 이상의 혁신이 나오지 않는 애플 등에서 이제 배울 것이 없다는 자신감이 행사 변경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니겠느냐"고 평가했다.

그러나 앞으로 삼성은 전시회의 명맥을 이어가면서도 변형된 형태의 새로운 전시회를 통해 위기의식을 심을 것으로 예상된다. 적자에 허덕이지만 여전히 기술에서 한발 앞서 있는 일본과 무서운 속도로 따라오고 있는 중국 업체들의 제품도 같이 분해해 전시하면서 이제는 추격이 아니라 위기의식을 통해 새로운 20년을 만들어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일반인에게 처음으로 전시회를 공개하는 것은 신경영 20년의 성과를 삼성 임직원뿐 아니라 일반 소비자들과도 공유해 20년 동안 삼성의 변신을 알리겠다는 취지로 분석된다.

첫 휴대폰에서부터 갤럭시S4, 첫 삼성 TV에서부터 1994년 시판한 명품TV, 1996년 생산한 명품플러스원, 4,000만원에 팔리는 초고화질(UHD) TV 등 TV 제품, 1983년 처음으로 개발에 성공한 64K D램에서부터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이르는 다양한 제품군을 전시해 소비자들에게 삼성의 20년 역사를 눈으로 확인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의 2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제품을 전시하는 것은 사실상 대한민국 전자산업의 흐름을 보여주는 일"이라며 "2류에 머물던 삼성전자를 세계 일류로 끌어올린 것은 삼성전자의 과거 제품인 만큼 소비자들에게도 삼성의 역사를 볼 수 있게 하는 좋은 이벤트로 남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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