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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수 머뭇거리는 연기금

코스피 하락에도 구원투수 역할 안보여<br>"자산배분 차원·바닥 확인 못해 고민" 분석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월 기준으로 올 들어 가장 큰 규모의 순매수를 기록했던 연기금의 매수세가 이달 들어 주춤하고 있다. 연기금은 국내 증시 하락시 매수 규모를 늘려 지수를 방어하는 '구원 투수' 역할을 자처해왔다는 점에서 이례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 같은 연기금의 투자 전략 변화에 대해 자산 배분 차원과 함께 아직 바닥을 확신할 수 없는 코스피지수에 대한 고민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전세계 자산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조기 출구전략 시행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국내 주식 투자에 대한 연기금의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연기금은 지난달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9,628억원을 순매수했다. 일평균 458억원 규모로 올해 들어 최고치다. 이 같은 연기금의 행보는 같은 기간 국내 증시의 주요 투자자인 투신이 3,138억원, 개인이 9,496억원을 순매도했다는 점에서 국내 증시에서 든든한 지지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6월 들어서는 연기금 매수 규모가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지난 14일까지 연기금은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3,132억원을 순매수해 일평균 285억원에 그쳤다. 연기금은 17일에도 223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이는 일일 기준 4월 말 이후 최대치다.

앞서 연기금은 1월 한 달 동안 연초 전세계 증시가 동시에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코스피지수가 69.16포인트(3.4%) 하락하는 등 약한 모습을 보이자 9,445억원(일평균 429억원)을 순매수 했다. 반면 코스피지수가 68.7포인트(3.5%) 오른 2월에는 5,813억원(일평균 306억원)을 순매수해 매수 규모를 줄이는 모습을 보였다.



류용석 현대증권 투자컨설팅센터 시장분석팀 팀장은 "연기금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산 배분"이라며 "최근 지수 하락에도 불구하고 연기금의 매수세가 약해진 것은 자산 배분에서 주식 비중을 조절하는 차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연기금은 기본적으로 연간 및 중장기적으로 채권ㆍ주식ㆍ대체투자 비중을 정해두고 이에 맞춰 계획적으로 투자를 진행한다. 따라서 채권 가격 변화에 따른 채권 비중 변화, 지수 하락에 따른 주식 가치 변화는 연기금의 주식 매입 규모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채권 가격 하락으로 상대적으로 주식 비중이 올라가자 정해진 자산배분 비율을 맞추기 위해 오히려 주식을 팔아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미 연준의 출구전략 가능성 언급으로 이달 들어 전 세계 채권 금리가 급등하면서 국내 채권 금리도 크게 올랐다.

류 팀장은 "최근 버냉키 의장의 발언은 출구전략에 앞서 시장을 테스트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당분간은 시장에서 출구전략 이슈가 계속해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연기금이 증시 투자 방향을 정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연기금의 투자 동향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변수는 그동안 심리적인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1,900선이 무너지면서 증시의 하방 경직성이 약해졌다는 점이다. 연기금 자금운용본부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까지만 해도 하방 경직성이 견고할 것으로 판단했는데 현재는 그렇지 않다"면서 "주가가 하락하면 주식 비중을 늘리는 게 맞지만 어디까지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투자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인들이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주식을 계속해서 팔고 있는데 이는 국내 주식 시장에 대한 기대치가 낮기 때문"이라며 "외국인의 매도가 멈추는 시점이 매수 시기를 고려하는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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