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의 이 같은 움직임에 당황한 산업은행은 금융감독원에 'SOS'를 쳤다. 국책은행의 피해만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금감원은 곧바로 시중은행 여신 부행장들을 소집,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 한도를 축소하지 말 것을 강력히 지시했다.
경남기업 사태 이후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 개입을 자제했던 금감원이 직접 나선 것은 대우조선해양 사태를 바라보는 위기의식을 여실히 보여준다.
12일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이 또다시 채권단을 향해 "비 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강한 메시지를 던진 것은 시중은행들의 '보신주의'가 여전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진 원장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기업도 각 금융기관이 경쟁적으로 여신을 회수할 경우 버텨낼 수 없다"고 밝힌 것 역시 다분히 국내 조선사 구조조정을 의식한 발언이다. 그동안 은행의 좋은 '돈벌이' 수단이 돼 준 조선업을 위기에서 지켜달라는 메시지다.
하지만 은행들은 이 같은 금감원장의 메시지가 달갑지 않다. 은행이 결코 '막연한 불안감' 때문에 움츠러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중공업이 대규모 손실을 입었고 삼성중공업도 상황이 좋지 않다. 은행들은 국내 조선사들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되면서 내부 규정 때문에라도 여신 한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자칫 자율협약에라도 돌입하면 반기 순익이 날아갈 정도의 충당금 쇼크가 발생한다. 여기에 그동안 대형 조선사들이 은행에 사실상 '갑질'을 해온 것에 대해서도 상당한 앙금이 쌓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들은 특히 대우조선해양 사태와 관련, 금융당국이 산업은행 중심으로 책임을 지겠다고 하면서도 꾸준히 은행의 '공동 책임' 가능성이 나오는 것에 대해 불안해 하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시중은행도 여신한도를 유지하는 등 최선을 다하겠지만 사실상 대우조선해양의 경영에 참여해왔던 당국과 산은이 보다 책임 있는 자세를 먼저 보여줘야 한다"며 "그간의 대기업 구조조정과 이번 사태는 다르다는 점을 당국도 명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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