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벤처가 종종 있습니다. 사외이사도 친분관계가 있는 인사가 도맡아 사회적 책무를 갖고 소신 있는 발언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김주원 한국투자파트너스 사장) 국내 대표적인 몇몇 벤처기업의 분식회계 파문으로 벤처업계에 기업 전반의 도덕성과 경영환경에 대한 일대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의 원인으로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와 함께 아직까지 여전한 밀실ㆍ독단 경영, 주력사업 부진에 따른 마구잡이식 투자 등을 꼽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를 차단하기 위한 핵심적 방안은 회계 투명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게임의 룰’을 강제하기 위해서는 내부회계관리 시스템 도입, 회계법인의 감사범위 확대, 벤처에 대한 법률ㆍ회계자문 서비스 강화 등의 보완책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다. 창업주들도 경영권에 대한 지나친 집착보다는 벤처 본연의 정신 회복에 나서야 한다는 주문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는’ 경영이 화(禍) 자초=벤처기업들이 벤처캐피털ㆍ회계법인 등 컨설팅 그룹과 파트너십을 적극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즉 이들의 조언을 경영간섭으로 받아들이는 마인드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 한 벤처 전문 로펌 관계자는 “만약 장흥순 전 터보테크 회장이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했다면 주식담보 대출금으로 유상증자 물량을 납입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지분 변동에 민감한 경영진일수록 자문단을 두고 정공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지니어 출신의 창업주가 많고 경기변동에 영향을 크게 받는 벤처 산업의 특징상 외부전문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최고경영자(CEO)의 자세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김형기 한국기술투자 사장은 “이번 사태는 벤처버블 때 잉태됐던 문제들이 수습되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다”며 “벤처기업가들로서는 겸손함을 잃지 않는 계기로 삼아야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CEO가 주식 매각으로 경제적 이익을 취득하는 것을 백안시하는 풍조도 변해야 투명경영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내부회계관리제도 도입 등 시스템 개선돼야=‘유리알회계’를 위해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예를 들어 전자전표ㆍ전자결재 등으로 회계정보처리를 프로세스화하게 되면 회계정보에 대한 신뢰성도 높아진다. 특히 내년부터 자본금 70억원 이상의 코스닥 상장법인과 비상장법인은 사내에 회계처리 매뉴얼을 포함한 독립적인 회계관리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오형근 벤처기업협회 상근부회장은 “내년부터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들은 내부회계관리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며 “비용부담이 적지않겠지만 투명기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벤처기업협회는 내부회계관리제도의 빠른 정착을 위해 회계법인과 손잡고 회계 컨설팅에도 적극 나설 방침이다. 회계법인의 보다 적극적인 감사 자세도 요구된다. 사실 소송 탓에 회계법인의 감사가 강화되는 추세긴 하지만 일부의 경우 회계법인과 피감사기업의 불건전한 동업자 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 상장기업 소프트웨어업체 재무담당이사는 “회계법인은 기업의 위험관리 수준이라든지 기업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의견, 윤리규범 준수 여부 등 비재무적 경영정보에 대한 검증까지 서비스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계분식과 오류를 적발하지 못한 회계법인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대신 전통적 회계감사 범위를 보다 넓혀 회계법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주장. 이는 분식회계로 인한 소액주주 등의 막대한 피해를 감안할 때 투자자들도 바라는 내용이다. 오 부회장은 “벤처 CEO들을 대상으로 법률ㆍ회계 등과 관련한 경영수업이 따로 필요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