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한국 주식을 내다 팔기만 한 외국인과 시장 지킴이 역할을 한 기관간의 ‘기 싸움’이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한해였다. 외국인이 한국주식을 11조원이나 팔아치우는 사이 투신을 비롯한 기관들이 10조원 이상을 사들이며 간신히 수급의 균형을 맞췄다. 내년 증시수급도 외국인과 기관이 어떤 모습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증시 전문가들은 내년에도 외국인들의 한국주식 내다팔기는 계속되겠지만 매도 규모는 올해보다는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기관의 매수 여력도 올해보다는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한마디로 ‘(외국인은) 팔아도 덜 팔고, (기관은)사도 덜 사는’ 장세가 유력하다는 것이다. ◇외국인, 차익실현 계속=올 한해 유가증권시장에서 외국인의 순매도ㆍ순매수 추이를 보면 코스피지수가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5월 한달 동안 무려 3조5,000억여원을 팔아치웠다. 과거 싼 가격에 미리 사두었던 국내 주식의 가격이 급등하면서 대대적으로 차익실현을 한 셈이다. 그러나 기관은 적립식펀드 등을 통해 유입된 자금을 바탕으로 강력한 매수 움직임을 보이면서 외국인들의 매물을 받아냈다. 전문가들은 2년간 지속된 외국인의 매도우위를 내년에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한국시장이 중국 등 다른 이머징마켓에 비해 큰 매력이 없다는 평가가 많다”며 “외국인들의 한국주식 내다팔기가 단기간 내에 중단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심재엽 메리츠증권 투자전략팀장도 “그동안 외국인들이 지속적으로 국내 주식을 내다 팔았지만 보유비중은 아직 37%에 달해 일본이나 대만 등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여전히 높은 편”이라며 “ 내년 상반기까지는 한국주식 비중 줄이기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팔아도 내년에는 덜 판다=그러나 내년에는 외국인의 매도 강도는 올해보다는 크게 약화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황금단 삼성증권 애널리스트는 “내년 한국기업의 이익전망이 최근 2년간에 비해 많이 개선될 것”이라며 “올해와 같은 대대적인 매도세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황 애널리스트는 “이미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펀드 가운데 한국주식의 비중은 2년 전 28% 수준에서 현재 22%대까지 떨어진 상황”이라며 “비중 줄이기가 이제는 서서히 일단락될 시점에 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긍정적인 신호도 감지된다. 최근 다우존스 조사에 따르면 해외 주식펀드를 운용하는 펀드매니저들이 한국ㆍ필리핀 등의 주식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제시하면서 아시아ㆍ태평양 주식 포트폴리오 내 비중전망도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분석결과 해외펀드 매니저들은 한국주식에 대한 전망을 11월의 ‘비중축소’(-0.5)에서 12월 ‘중립’(0)으로 상향 조정했다. ◇기관매수 ‘축소’, 연기금은 ‘기대할 만’=그동안 국내 증시의 버팀목 역할을 한 기관매수여력은 올해보다는 상당히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많다. 적립식펀드를 비롯한 투신권의 자금이 해외로 몰리는 추세인데다 내년에 만기가 돌아오는 일부 적립식 펀드의 환매도 우려돼 전체적으로 국내 증시에 투자될 펀드 자금 규모가 줄어들 여지가 큰 때문이다. 심재엽 투자전략팀장은 “시장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겠지만 신규자금 유입 규모는 소폭 감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투신이 비운 자리를 연기금이 대체하면서 부족해진 수요를 다소나마 채워 줄 것으로 전망된다. 11조원에 달하는 연기금의 내년 투자자금 가운데 증시로 신규로 유입되는 자금 규모가 5조8,000억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수급을 좌지우지하는 ‘공룡’들의 매수유망 업종은 대체로 유통ㆍ건설ㆍ금융 등 내수주에 몰릴 것이란 지적이 많다. 특히 외국인의 경우 올해 충분히 사들인 조선주나 원화강세의 여파에 시달리는 자동차 등 수출주는 내년 상반기 이후에나 매수에 나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됐다. 덩치를 키운 연기금이 수급상황에 영향을 미칠 주요 종목들의 색깔에도 변화를 줄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황 애널리스트는 “투신권이 옐로칩ㆍ단기 모멘텀 종목에 치중하고 있는 반면 연기금은 여전히 장기투자 종목 선호도가 높다 보니 대형주에 대한 매수가 올해보다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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