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기 불확실성으로 기업 투자가 '시계 제로' 상태에 빠지면서 회사채 발행 물량이 '뚝' 떨어졌다. 한국은행이 지난 8월과 10월 기준금리를 두 차례 합쳐 0.5%포인트 인하하면서 조달금리가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회사채 발행 물량은 되레 크게 줄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기존보다 싼 값에 돈을 빌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기업들이 투자를 주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기업들의 몸 사리기에 따른 회사채 공급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국채와 회사채 간 금리차이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 들어 발행된 회사채는 총 52조2,47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64%나 급감한 수치다. 특히 회사채 순발행액은 같은 기간 4,379억원 줄어들면서 최근 8년 사이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순발행액은 전체 발행액에서 만기도래액을 뺀 액수다. 즉 회사채 순발행액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는 것은 기업들이 신규 발행도 꺼리지만 만기가 돌아온 회사채에 대해서도 차환발행보다 현금상환에 나서고 있다는 얘기다. 신규 투자를 위한 회사채 발행도 줄이고 있지만 빌린 돈의 만기를 연장하기보다는 보유한 현금으로 상환해 이자비용이라도 줄여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다. 회사채 순발행액은 2010년 18조361억원에서 2011년 30조8,045억원, 2012년 32조2,538억원으로 증가세를 보이다 지난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회사채 발행시장이 급속도로 위축되면서 유통시장에서 국채와 회사채의 금리차이가 크게 좁아지는 등 엇갈린 수급에 따른 가격이상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신용등급 AA-의 회사채 3년물 유통금리는 2.521%로 국채 3년물(2.2%)에 불과 32bp(0.32%p) 수준까지 좁혀졌다. 보통 국채와 회사채의 만기가 같으면 회사채 금리가 훨씬 높아야 정상이다.
은성민 메리츠종금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원·엔 환율 하락세가 가파른데다 중국과 유럽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 회복세도 지연되면서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보수적인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서 "기업 투자 수요가 당분간 살아나기 힘들다는 점을 고려하면 회사채의 수급 불균형은 더욱 심해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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