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자금이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시장 규제, 증시조정 등의 여파로 은행금고로 대이동을 시작한 시중자금이 은행권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들 자금이 기업대출로 흘러가지 않고 단기 부동화돼 주식·부동산 등 자산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8·9월 두달간 은행 수신은 30조원이나 늘어난 반면 자산운용사의 수신은 26조1,000억원 줄었다. 주가가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시중자금이 증시에서 은행으로 몰린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시중자금이 기업·가계 등으로 흘러가지 않아 투자 및 소비 확대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국내 은행의 기업대출은 7월 2조4,000억원, 8월 3조원, 9월 2조9,000억원 등으로 2조~3조원대에 불과했다. 이 같은 은행들의 기업대출 규모는 2007년(연간 79조3,000억원), 2008년(78조3,000억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규모다. 은행들의 가계대출도 7월 2조6,000억원, 8월 3조원가량 늘더니 9월에는 오히려 1조원 줄었다. 정부가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를 강화하자 주택담보대출이 줄어든 탓이다. 특히 은행에 몰린 자금은 기업이나 개인이 일시적으로 맡겨놓은 대기성 자금이라는 점에서 자산시장의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8월 현재 협의통화(M1)는 전년동기 대비 18.5% 늘어나면서 2002년 8월(20.3%) 이후 최고치를 유지하고 있다. M1은 현금에다 은행 요구불예금과 수시입출식 저축성예금을 포함한다. M1 증가율이 높다는 것은 시중자금이 현금화가 쉬운 초단기 금융상품에 몰리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뭉칫돈은 은행에도 부담을 주고 있다. 기업이나 가계가 돈 빌리기를 꺼리면서 돈 굴릴 데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자금담당자는 "지난해 말에는 돈 구하기가 어려웠다면 이제는 조달비용과 운용수익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고민"이라며 "부동산ㆍ증시가 다시 달아오를 경우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것도 우려할 만한 사항"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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