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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여신… 당국선 “뒷짐”/“벼랑끝” 금융시장 현주소
입력1997-07-28 00:00:00
수정
1997.07.28 00:00:00
권홍우 기자
◎금융기관들도 실상외면 상황 더악화사실상의 부실여신 40조원.
벼랑 끝에 선 우리 금융시장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보, 기아사태 등으로 인한 은행권이 안게 된 장기 무수익자산 20조원은 시중은행의 자기자본 합계 19조원을 웃도는 규모다.
지난 6개월동안 재벌그룹의 부도 도미노가 이어지면서 은행들의 상반기 경영은 말이 아니다. 한보와 기아의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은 사상 최대규모인 3천5백65억원의 적자를 냈다.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은 한국은행에 구제금융 성격의 연 3%짜리 특별융자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종금, 보험, 증권, 리스사 등 제2금융권의 상황도 마찬가지다. 일부 종금사들은 부분적인 예금 인출사태까지 겪고 있다. 한 생명보험사는 지난 6개월동안 부실화된 여신 규모가 30년동안 부실누적액과 맞먹는 규모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고도성장을 구가해온 리스업계도 부실 누적과 경영적자에 직면했다.
해외 조달도 막히고 있다. 올 상반기중 국내기업과 금융기관의 해외차입규모는 모두 1백7억달러. 지난해 상반기의 1백37억달러보다 21.4% 줄어들었다. 90년 이후 처음 감소세를 기록했다. 금융의 개방화 국제화 추세를 감안할 때 이례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동남아 통화 위기까지 겹쳐 국내 금융기관들은 차입 애로와 직접투자분 손실이라는 이중고에 빠졌다.
자금시장도 얼어붙고 있다. 금융기관마다 극도로 몸을 사리면서 기업들의 돈구하기가 정말 어려워졌다. 사채시장은 물론 제도권인 2금융권에서도 3대 재벌그룹이외에는 어음할인을 기대하기 힘든 형편이다.
부실채권 누적에 따라 금융권 전체가 한꺼번에 위기를 맞으면서 최악의 시나리오가 우려되는 실정이다. 예금인출과 환율 폭락, 주식투자 등으로 국내에 유입된 외국인자금의 일시 유출과 그에 따른 일대 충격이 우려된다는 얘기다.
재정경제원과 한국은행 등 금융당국은 아직 이같은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할 가능성에 대해 일축한다. 금융권의 부실여신 규모도 될 수 있는 한 줄여 공표한다는 입장이다. 자칫 금융대란을 부채질할 소지가 있다는 우려때문이다. 국내 금융기관들의 해외신인도 하락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도 덧붙이고 있다.
물론 이같은 당국의 입장도 전혀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당국이 금융위기의 실상을 국내에서 쉬쉬하고 있는 사이 외국에서는 우리의 약점을 더 자세히 알고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당장 국내금융기관들의 해외차입이 무산되거나 금리가 올랐다.
리보(LIBOR:런던은행간 금리)에 0.5%를 더한 수준에서 돈을 빌렸던 국내은행들의 해외차입금리가 최근 리보에 1%포인트를 더한 수준까지 올랐다. 외국에서는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진출이나 기업들의 합작사업에 정부의 보증을 공공연히 요구하고 있다.
집단부실의 주인공인 금융기관들도 아직 실상을 한사코 외면하려는 자세다. 자회사 매각이나 인원의 대폭 감축같은 대대적인 자구노력을 결정한 곳은 아직 없다. 외국계은행 관계자는 『단기간에 이만한 부실을 내고도 은행이 이처럼 버텨 나가는 나라는 전세계를 통틀어 한국밖에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국가경제에 막대한 손실을 입힌 기업들도 자구노력보다 여론의 동정 유발에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 기업들이 위기의 실체 파악을 애써 외면하면서 어떻게 되겠지 하는 소극적 자세에 빠져 있는 동안 귀중한 시간만 마구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다. 연말 대선을 앞두고 사회 전체적인 「정치만능」분위기에 휩쓸려 어느 누구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
위기 극복의 첫발은 정확한 상황판단에서 시작된다.<권홍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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