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연합회가 최근 대언론 홍보를 강화하는 등 중견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지만, 정작 기본적인 정보 공개는 거부하는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공동체의 지원을 소리높여 요구하면서 여전히 폐쇄적이고 투명하지 않은 태도를 보여 심각한 불신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결국 중견기업 지원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를 형성하는 데 큰 방해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중견련은 중견기업 지원 이유로 내세워온 '중견기업 비중 0.04%'의 근거가 되고 있는 중견기업수 1,422개에 대한 검증을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다. 중견련은 한국의 중견기업 수가 1,422개로 전체 기업체수의 0.04%에 그치고 있어 산업의 허리가 매우 빈약하다는 주장을 줄곧 강조해왔다. 그러나 1,422개 기업이 어디인지 명단 공개는 철저히 묵살, 강한 의혹을 낳고 있다.
실제로 중견련은 지난 26일 기자간담회에서 1,422개의 중견기업 명단 공개 요청에 대해 "비공개가 원칙"이라며 단박에 거절했다. 통계를 담당하고 있는 유영식 상무는 "도대체 중견기업 명단을 요구하는 이유가 뭐냐"며 "중견련은 공개할 수 없다는 원칙을 정했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리스트는 절대 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국가적인 통계에 대해 알려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다"는 사실과 다른 발언도 덧붙였다.
중견련이 어느 공공기관이나 사설단체도 기업 명단 등 기초 데이터를 제공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이는 허위 주장에 가깝다는게 업계와 학계의 판단이다. 일례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상호출자제한집단에 속하는 대기업을 수시로 발표하고 있다.
중소기업청도 중견기업인 1,500여 개의 관계기업 명단을 지속적으로 갱신, 홈페이지에 공시하고 있다. 관계기업 수를 더한 중견기업 수는 3,000개에 육박해 중견련의 '중견기업 1,422개'통계는 이미 잘못으로 판명이 난 상태다. 아울러 중소기업중앙회,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기업단체들은 회원사 명단을 비롯 정책이나 사업 대상이 되는 기업 리스트를 공표하거나 언론의 요청에 따라 거리낌없이 제공 중이다.
잘못된 데이터 때문에 통계 오류를 빚은 중기청은 최근 비공개 입장을 철회, 중견련과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중기청은 오는 10월께 갱신된 중견기업 통계를 내놓으면서 중견기업 명단을 공식적으로 공개할 계획이다. 중기청 관계자는 "10월에 2012년도 말 기준 중견기업 통계를 발표한다"며 "동시에 중견기업 리스트를 오픈하고 데이터베이스화해 누구나 인터넷으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통계에서는 관계기업을 포함했을 때와 포함하지 않았을 때 등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수치를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기청의 투명 공개 방침과 달리 중견련은 시종일관 명단 비공개를 고수하고 있어 1,422개라는 중견기업수 자체에 심각한 오류가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중소업계 관계자는 "어떤 기업들이 중견기업인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1,422개라는 숫자를 있는 그대로 믿을 수 있겠느냐"며 "게다가 중견기업 수 1,422개는 사실상 중견기업인 관계기업들을 누락한 수치로 이미 신뢰를 잃었다"고 꼬집었다.
앞서 중견련은 과거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의 위탁을 받아 직접 중견기업 통계 초안을 작성했다. 지경부의 확인을 거쳐 지난해 발표된 이 통계는 현재 중견기업 정책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어 시정이 시급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논란이 증폭되자 중견련 내부에서도 리스트 공개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는 등 자중지란을 보이고 있다. 중견련 고위 관계자는 "리스트를 공개하라고 지시했지만 담당자가 안 된다고 해 못 주게 됐다"며 "기업에 대한 상세한 정보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명단을 공개하지 않는 것에 대해 스스로도 수긍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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