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존재의 이유
입력2002-05-28 00:00:00
수정
2002.05.28 00:00:00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이 요 근래 부쩍 많이 인용되고 있다. 며칠 전 어떤 백화점은 "나는 뛴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앞세워 큼직한 광고를 냈다.
"나는 축구를 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다는 우루과이 작가의 책이 소개되기도 했다. 노재봉(盧在鳳) 전 총리가 얼마 전에 있었던 어떤 조찬모임에서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썼다.
돈 있는 사람은 있는 대로, 돈 없는 사람은 빚을 내서라도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요즘의 세태라는 지적이었다. 빚을 얻기 어려우면 신용카드를 긋기만 하면 되지 않는가. 무언가에 돈을 쓰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또 과시해 보려는 풍조라고 한탄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얼마 전 저녁자리에서 가까운 친구가 신용카드 때문에 당혹스런 경우를 당했다는 말을 털어놓았다. 얘기의 줄거리는 대략 다음과 같다.
"아내가 사우나 락커에서 신용카드를 잃어버렸다. 잃었다기보다 누군가가 훔쳐갔다. 카드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즉시 신고를 했는데,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사이에 450만원이 빠져 나갔다고 한다.
그 내용을 추적하니 외제 옷 두 벌과 90만원짜리 외제 샌들을 사갔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에 고발했다. 곧 범인이 잡혔다는 연락이 왔다. 범인은 나이 어린 처녀였다.
예상외로 빨리 잡히게 된 것은 90만원짜리 샌들이 좀 적다고 바꾸러 왔다가 때마침 현장에서 조사를 하던 수사요원에게 들킨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경찰에 끌려간 어린 처녀의 어머니가 자기 딸을 관대히 처리해 달라는 전화를 걸어왔다. 알고 보니 교양 있고 부유한 알 만한 집안이었다. 경찰에서는 카드사범을 엄중 단속해야 하므로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태도였다.?
이런 전말을 전하며 친구는 그 처녀를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다. 저녁자리가 한동안 시끄러워졌다. 큰 손해가 난 것도 아니니 너그럽게 하라는 말도 없지는 않았으나 좌중의 결론은 경찰에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부유한 집에서 제대로 자랐을 처녀가 왜 남의 카드를 훔쳤을까. 외제 옷과 90만원짜리 외제 샌들이 그렇게 갖고 싶었을까.
근래 카드 빚에 쪼들린 나머지 자살.살인.강도짓을 서슴치 않는 젊은이들이 우리 주변에서 화제가 되고는 한다. 틀림없이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소비행태에서 연유한 때문일 것 같다. 우리는 지금 비싼 월사금을 치르고 있는 듯하다.
김용원(도서출판 삶과꿈 대표)
document.write(ad_script1); ▲Top
| | ||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