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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금융통화위원회가 끝난 뒤 시장은 '한동안 기준금리는 동결'이라고 결론을 냈다. 금통위에서 기준금리 '인하'의 소수의견도 없었던데다 회의 이후 이 총재는 기자회견에서 매파의 면모를 충분히 드러냈기 때문이다. "현재의 금리수준이 경기를 뒷받침하기에 충분하다"부터 "엔저 현상에 대한 시장의 반응이 과도하다" "수출은 내용으로 보면 양호한 흐름 가고 있다고 판단한다" 등이 대표적. 이 총재는 11월 금통위 하루 뒤 열린 금융협의회에서는 "가계대출 증가세를 눈여겨보고 있다"고 말해 '기준금리 인하는 이제 없다'는 해석에 힘을 실어줬다.
하지만 이 총재가 시장에 준 신호의 약효는 한 달이 채 안 돼 사라졌다. 지난달 21일 중국 인민은행이 금리를 낮추자 '우리나라도 추가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금씩 등장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같은 달 26일 '일본의 90년대 통화정책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일본의 교훈을 보면 디플레이션의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선 신속한 통화완화(금리 인하)가 필요하다"고 밝히면서 금리의 추가 인하론에 불씨를 당겼다. 통계청이 밝힌 11월 소비자물가는 1.0%로 떨어졌고 저물가의 원인으로 지목된 유가와 농산물가격을 제외하더라도 물가(근원인플레이션)는 1.6% 상승에 그치면서 디플레이션의 우려를 한껏 키웠다. 국고채 3년물 금리도 기준금리(2.0%)에 다시 근접했다. 금리 인하의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디플레이션 위험이 고조되자 12월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진단도 늘고 있다. 권영선 노무라 이코노미스트는 글로벌 수요 둔화와 내수 소비 부진, 인플레이션 하락, 침체한 주식 시장 등의 영향으로 한은이 12월 추가 완화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은이 12월 회의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으로 예상은 하고 있다"면서도 "이번 회의에서 한은이 금리를 25bp(1bp=0.01%포인트) 낮춰 1.75%로 인하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반기에만 두 번이나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효과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고 대내외 여건은 기준금리를 추가 인하를 압박하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 이 총재는 12월에 기준금리를 인하할까. 동결 가능성이 더 높다. 2.0%는 사상 최저 기준금리인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때 비상용을 꺼낸 수준과 같다. 1%대까지 낮추기에는 경기의 충격이 그때보다는 덜하다는 의견이 한은 내에 지배적이다. 동시에 급증하는 가계부채도 부담이다. 지난 3·4분기 예금취급기관 가계대출은 2006년 4·4분기 이후 가장 큰 폭인 17조7,000억원이 늘었는데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이다. 11월 금통위 의사록을 보면 의견을 개진한 6명의 금통위원 중 4명은 가계부채의 증가세에 모두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동안 기준금리 방향의 나침반 역할을 해오던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더는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여기에다 자금 이동이 많은 연말에는 금융위기 등 특수한 상황이 아닌 한 기준금리를 조정하지 않은 점도 동결 전망이 우세한 이유 중 하나다.
시장은 그래서 12월 금통위 때 이 총재의 입과 소수의견을 주목하고 있다. 이 총재는 금리 인하에 앞서 시장에 신호를 줬다는 점, 그리고 금통위에서의 소수의견 이후 금리를 인하했다는 측면에서 12월 금통위를 주시하는 것이다. 윤여삼 KDB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만장일치 결정일지 또는 소수의견이 나올지가 시장은 관심"이라면서 "특히 이 총재가 현재의 상황에 대해 어떤 진단을 내릴지를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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