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일본의 사카타 에이오(坂田榮男) 9단은 바둑을 ‘슬픈 드라마’라고 했다. 패배한 쪽에서 그 패배의 절대적 수순을 탄식한 말이었다. 이 바둑의 양상을 가만히 살펴보면 쌍방의 돌들이 참으로 절묘하게 뒤엉켜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돌들이 저마다 교묘하게 제 역할을 찾고 있다. 이미 숨이 넘어갔던 돌들까지도 사명의 끄나풀에 연결되어 있다. 백2로 넘어간 수가 선수로 활용된 것이 수상전의 하이라이트. 흑3의 응수는 절대수. 여기까지 응수시켜 놓고 백4로 잇자 수상전의 양상이다. 흑5 이하 18의 수순을 보고 검토실의 서봉수9단이 말했다. “삼패가 나게 됐어요.” 옆에 있던 기자 하나가 물었다. “삼패라면 무승부가 되는 거 아닌가요?” “맞아요. 이 판은 무승부로 끝나고 다시 한 판을 두게 될 겁니다.” 백18이 놓였을 때 흑이 참고도의 흑1에 끊을 수는 없다. 백2 이하 16까지(4…먹여침. 5…따냄. 7…이음) 흑이 전멸하게 된다. 백이 24로 몰았을 때 흑이 7점을 살리면 수상전에 진다. 이제 쌍방이 꼬리를 떼어주면서 수를 조여나가는 일만 남았다. “무승부로 끝나면 최철한이 너무 억울하게 되는 거군요. 다 이긴 바둑이었는데….” 필자가 묻자 김성룡9단이 대답했다. “뤄시허도 억울할 겁니다.” (20…5의 위. 21…19의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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