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욕적으로 참담해진 한국 '초비상' 걸렸다
IT 뺀 모든 업종 곤두박질… 환율하락 겹쳐 4분기도 장담 못해■ 상장사 어닝쇼크화학·기계·철강 특히 부진 믿었던 자동차도 힘 못써글로벌 침체 악재·대선 변수 대부분 실적 악화 지속 우려
서은영기자 supia927@sed.co.kr
3ㆍ4분기 어닝시즌이 시작되기 전 국내 기업들의 실적을 바라보는 시장의 눈은 불안 그 자체였다. 그럼에도 시장의 기대치를 계속 낮추고 이달 초 삼성전자가 예상을 훨씬 웃도는 영업이익을 잠정 발표하면서 한때 '혹시'나 하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상당수 대기업들의 실적발표 결과는 참담한 것이었다. 삼성전자가 속한 전기전자(IT)를 뺀 거의 모든 업종이 시장의 낮아진 눈높이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어닝쇼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성장률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다 원ㆍ달러 환율까지 가파르게 하락하면서 수출에 비상이 걸린 만큼 4ㆍ4분기에도 실적회복을 기대하기 힘든 처지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상장사들의 어닝쇼크는 전방위로 나타났다. 28일 금융감독원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12월 결산법인 중 3ㆍ4분기 한국채택 국제회계기준(IFRS)으로 연결실적을 발표한 41개 상장사 가운데 지난달 말의 시장 추정치를 밑도는 곳은 33개에 달했다. 하반기 이후 각 증권사들이 실적전망을 계속 낮춰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3ㆍ4분기 성적표는 '낮아도 너무 낮은' 것이다.
개별 업체별로 봐도 삼성테크윈ㆍ금호석유ㆍ두산중공업 등 추정치보다 20% 이상 영업이익이 줄어든 기업만 17곳에 이른다. 10개 기업 중 4개 기업이 심각한 어닝쇼크를 기록했다는 의미다.
화학ㆍ기계ㆍ철강 업종은 특히 부진한 모습을 연출했다. 케이피케미칼은 당초 소폭의 흑자를 기대했지만 실제로는 74억원 적자로 곤두박질쳤고 두산인프라코어(-76.9), OCI(-59.1%), 두산(-61.05%) 등은 추정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성적표를 제출했다.
주목할 점은 올 들어 IT와 함께 꾸준히 성장기조를 유지하며 그나마 실적부진을 만회해왔던 자동차 관련 기업들이 3ㆍ4분기에는 거의 힘을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현대차의 경우 3ㆍ4분기 영업이익이 2조558억원에 그쳐 한 달 전 추정치보다 1,700억원 넘게 줄었고 기아차(약 2,200억원), 현대모비스(약 2,200억원)도 기대치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표를 제출했다. 예상치를 넘어선 영업이익을 선보인 곳은 현대위아가 유일했다.
반면 IT업종은 1ㆍ4분기와 2ㆍ4분기에 이어 이번에도 예상을 웃도는 성적표를 제출해 그나마 위안거리로 남았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시장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8조1,24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체 영업이익의 43%에 달하는 수치다. SK하이닉스도 영업손실 규모를 151억원으로 줄이며 시장으로부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삼성전기 역시 추정치를 10% 이상 웃돌았다.
전문가들은 3ㆍ4분기 실적이 낮아진 눈높이조차 감당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를 예상보다 심각한 글로벌 경기침체에서 찾고 있다. 김학균 KDB대우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 침체로 소비나 투자가 크게 줄었고 이로 인해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다"라며 "특히 중국이나 유럽의 경기 회복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철강ㆍ조선ㆍ화학 등 대부분의 업종이 기대치 이하로 낮아졌다"고 지적했다. 강송철 유진투자증권 연구원도 "그동안 실적기대감을 크게 낮췄음에도 시장 예상치를 하회하는 곳이 압도적으로 많았다"며 "남은 기업도 이익 전망치 하향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이러한 실적악화가 3ㆍ4분기뿐만 아니라 4ㆍ4분기 이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주요국가의 수요가 여전히 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원화 강세 및 우리나라와 미국의 대통령 선거 등 불확실성도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원은 "경기를 다시 살릴 만한 이렇다 할 호재가 없어 4ㆍ4분기에도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 실적이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며 "원ㆍ달러 환율이 최근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실적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 등 주요 국가들에서 통화와 금리정책을 내놓는 등 노력을 하고 있지만 효과가 크지 못한 상황"이라며 "4ㆍ4분기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통령 선거에 따른 불확실성으로 기업들이 투자를 미루고 있는 점도 실적의 추세 전환 기대감을 낮추게 하는 요인"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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