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는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를 개선하기 위한 검토작업에 착수했다고 1일 밝혔다. 공정위의 이 같은 움직임은 대기업이 재무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과징금의 상당액을 감경받는 바람에 중소기업이 더 많은 과징금을 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공정위는 국책사업인 천연가스 주배관 1·2차 건설공사 입찰에서 담합해 1조7,000억원 규모의 공사를 나눠먹은 건설업체 22곳을 제재했다. 당시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은 총 1,746억원으로, 중견 건설사 한양이 현대건설(362억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315억원을 부과받았다. 중소업체인 삼보종합건설에는 69억4,000만원이 부과됐다.
이는 현대중공업(69억2,000만원), 두산중공업(62억5,000만원), GS건설(61억4,000만원), 한화건설(57억8,000만원)보다도 큰 액수다.
이를 두고 건설업계에서는 “대기업은 적자를 이유로 과징금을 얼마 내지 않는데 중소업체는 자본금보다 더 큰 돈을 토해내기 도 한다”며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법 위반 정도가 크게 차이 나지 않음에도 대기업이 중소·중견업체보다 결과적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된 것은 기업의 실제 납부능력을 고려해 과징금을 부과토록 하는 공정위 규정 때문이다.
사실 공정위는 매번 ‘솜방망이 처벌’ 지적을 불러일으키는 과징금 고시 조항을 지난해 2월에 이미 뜯어고쳤다. 3년간 당기순이익 가중평균이 적자일 때 과징금 총액의 50%를 초과해 감액토록 한 규정을 없앴다.
아울러 단순히 자금 사정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는 과징금을 깎아주지 않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작년 8월부터 시행된 개정 고시는 이전 사건에는 소급적용이 안 된다.
이 때문에 2009∼2012년 벌어진 주배관 담합 사건은 기존 규정에 따라 과징금이 결정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주배관 사건에 예전 고시를 적용하다 보니 대기업들이 최대 70∼90%까지 감경받았다”며 “새 기준으로 과징금을 산출했다면 60억∼70억원 정도에 그친 곳도 300억 가까운 액수를 물어야 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정위가 현재 조사 중인 불공정거래 사건 중에는 3∼4년 전 발생해 종전 부과기준을 적용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형평성 논란’은 앞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공정위는 이런 점을 고려해 개정고시 시행 전 사건에 대해서는 재무상태를 이유로 과징금이 과도하게 깎이지 않도록 종전 규정을 최대한 엄격히 운용할 방침이다. 또 중소기업들에 대해서는 지나친 과징금 때문에 경영상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적절한 대응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과징금 부과시 형평성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가능한 요인을 모두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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